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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북한발 가짜뉴스 없다고 할 수 있나

    신동흔 문화부 차장

    발행일 : 2023.03.20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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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에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심의가 한 건 올라왔다. 민노총 홈페이지에 북한 조선직업총동맹이 보낸 글을 올려 놓아도 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해당 글에서 북한은 최근 한미동맹 강화를 남한 보수 집권 세력의 친미 사대주의의 결과라면서 한미합동 군사연습 반대 투쟁에 노동자들이 함께 나서자고 했다. 이 게시물이 이적 표현물인지에 대해 5명으로 구성된 통신소위는 다수(3명) 의견으로 '해당 없음' 결론을 내렸다. '표현의 자유 보호' '다양한 사상과 주장을 인정할 필요성' 등이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그 결과 '주체111(2022)년 8월 13일'로 작성일이 명기된 이 글은 지금도 민노총 자료실에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구성된 방통심의위에서 내린 결정이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적발된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사건을 보면, 방심위 결정은 너무 순진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자통 사건은 우리가 추구해온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다양성 등이 북한 같은 집단이 남한 여론을 유린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활동 공간은 이미 소셜미디어 공간으로 옮겨와 있다. 검찰에 따르면, '보수 유튜브 채널에 회원으로 위장 가입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댓글을 게시하라'든지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 괴물고기 출현 등 괴담을 유포해 반일 감정을 고조하라'는 식의 깨알 지령이 북으로부터 내려왔다. 북한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꽤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작년 10월 29일 핼러윈 참사 직후 하달됐다는 '퇴진이 추모다' 구호의 경우, 참사 직후 처음 열린 11월 5일 주말집회에 곧바로 같은 문구가 씌어진 팻말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팻말 든 시위대 모습은 '자주시보'라는 친북 성향 매체에 당일 실시간으로 집중 보도됐다. 여기엔 내적 연관성이 존재할 것이다.

    수백만 명이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만나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일종의 복잡계 현상이다. 일반적 물리 법칙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원인과 결과를 쉽게 찾기도 힘들다. 대신 미세한 사건이나 글귀 하나가 마치 '폭포'(information cascade)처럼 여론을 만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언어를 씨(seed)처럼 대중의 뇌리에 심는다는 말도 한다. '퇴진이 추모' '후쿠시마 오염수' 식으로 한번 뿌려진 언어의 씨앗은 좀처럼 사라지지도 않는다. 여기엔 큰돈이나 조직도 필요하지 않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사로 유명한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 출마 2년 전 '장벽 건설(build the wall)' 등의 문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인터넷에서 시험해본 일화는 유명하다. 러시아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란 회사는 수백 개 트위터와 페이스북 허위 계정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영국 특정 지역에서 동유럽 이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유의 글을 유포했다. 가디언 등 영국 주요 매체가 탐사 보도와 현장 확인을 통해 그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밝혀냈을 때는 이미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후였다. 미국 예일대의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저서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The Road to Unfreedom)'에서 "자유 세계의 혼란 자체가 러시아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갈파했다. 우리의 경우, 남한 내 혼란은 곧바로 북한의 체제 유지에 이롭게 작용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이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이러니다.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철 지난 공안몰이'라고 폄훼할 일은 결코 아니다. 북한에서 만든 가짜 뉴스와 선동 문구가 대중들 머릿속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기고자 : 신동흔 문화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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