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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 마크롱은 모든 걸 걸었다

    김광일 논설위원

    발행일 : 2023.03.20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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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선 한강을 기준 삼아 강남·강북이라 하지만, 파리는 센강 동쪽에서 서쪽을 보고 서서 '강 왼편(리브 고슈), 강 오른편'으로 나눈다. '리브 고슈'에 주불 한국 대사관이 있다. 이곳에서 로댕 미술관과 총리 공관을 등지고 북쪽으로 눈길을 두면 하원(下院), 콩코르드 광장, 엘리제궁이 차례로 펼쳐진다. 모두 걸어서 10분 이내다. 이 도심이 주말 시위로 불길에 휩싸였다. 마크롱 정부가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자 벌어진 일이다.

    ▶전날 프랑스 의회는 연금 받는 나이를 지금의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늦추는 법안 표결을 하게 돼 있었다. 앞서 상·하원 합동 위원회가 8시간 마라톤 회의까지 거쳤다. 오전에 상원을 통과했고, 오후에 하원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 '하원 부결 가능성' 낌새를 눈치챈 마크롱이 긴급 각료 회의를 소집했다. 엘리제궁에 엘리자베트 총리와 장관들이 속속 모여들자 마크롱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특단의 조치를 발동했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은 '정부 단독 입법'이란 출구를 열어놓고 있다. 의회가 기능 마비에 빠지면 총리가 대신 나설 수 있다. 정부의 법안 상정을 앞둔 총리가 먼저 의회에 '내각 불신임 여부'를 묻는다. 이게 부결되면 법안 통과로 간주하고, 대신 가결되면 법안 폐기는 물론 내각까지 총사퇴한다. 다소 복잡하고 우악스러워 보이는 절차다. 의회가 정부를 믿는다면 법안 통과, 못 믿겠다면 다 관두자는 것이다.

    ▶총리는 원래 사회당 출신이었는데 중도 자유파인 마크롱의 르네상스당으로 옮겼다. 그는 의회 연단에서 "불확실한 몇 표 때문에 175시간에 걸친 의회 토론의 결과가 무너지면 안 된다" "연금제도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할 순 없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야유를 퍼붓고 피켓을 흔들며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다 퇴장하기도 했다. 광장 시위 군중은 대통령을 '폭군' '독재자'라고 부르며 마크롱 인형을 불길 속에 던졌다.

    ▶1968년 학생 혁명 때 슬로건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희극배우 잔 얀(Yanne)이 처음 말해서 널리 퍼졌다. 그만큼 모든 자유를 중시한다는 이 나라의 경찰이 엊그제 콩코르드·샹젤리제 주변에서 집회를 일절 금지한다고 밝혔다.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은 연금 개혁이 화염병과 폭죽으로 멈출 순 없기 때문이다. 마크롱·엘리자베트 정권은 정치생명을 걸었다. 사실상 5년 임기는 선택과 결단의 연속인데 아차 하면 벼랑이다. 그러나 버리는 게 없다면 선택도 아닐 것이다.
    기고자 : 김광일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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