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랄로와 리게티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발행일 : 2023.03.20 / 특집 A20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고국의 음악적 특징 살려… 독창적인 선율 만들어냈죠

    올해 기념할 만한 해를 맞은 음악가가 여럿 있습니다. 낭만적인 피아노 작품들로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라 국내외 클래식 음악계가 떠들썩한데요. 그와 함께 놓쳐서는 안 될 작곡가 두 명이 있습니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에두아르 랄로(Lalo·1823~1892)와 100주년인 죄르지 리게티(Ligeti·1923~2006)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스페인·헝가리계로 태어났지만 그런 민족적 한계를 벗어나 범유럽적 작풍(作風·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특수한 예술적 수법)을 보이며 독자적인 색채를 나타낸 인물들이죠.

    정열과 힘이 담긴 랄로의 음악

    에두아르 랄로는 프랑스 릴에서 스페인계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났습니다. 그는 대대로 군인으로 활동해 온 집안 출신이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이 릴의 음악원에서 취미로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우는 것은 허락했지만 직업 음악가가 되는 것은 반대했어요. 결국 랄로는 16세에 홀로 집을 떠나 파리 음악원에서 고학(苦學)하며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프랑수아 아브넥 등에게 지도를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사사(師事·스승으로 섬김)한 아브넥은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 초대 지휘자였으며 베토벤 음악을 파리에 적극적으로 알린 인물이기도 했어요.

    랄로는 오페라에 열의를 보였지만 브르타뉴 지방 전설을 담은 오페라 '이스의 왕'이 발표된 후 오랫동안 상연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프랑스 청중은 그의 음악이 난해한 데다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음악과 닮았다며 거부감을 표시했죠. 이에 다른 분야로 관심을 돌린 랄로는 첼로 협주곡, 교향곡 등을 써 인정받았어요. 또 연주자로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줄 아르멩고와 함께 '아르멩고 4중주단'의 창단 멤버가 되어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맡으며 베토벤의 현악4중주들을 프랑스에 소개했습니다.

    스페인계였던 랄로의 작품에서는 라틴음악 특유의 정열과 힘이 풍깁니다. 랄로의 대표작을 언급할 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바이올린 협주곡인 '스페인 교향곡' 작품 번호 21입니다. 협주곡에 '교향곡'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 특이하죠? 바이올린의 기교적인 활약도 뛰어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오케스트라의 음향도 웅장하고 풍성한 느낌이라서 이런 제목으로 불려요. 모두 5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각 악장의 개성이 모두 달라 지루할 틈 없이 감상할 수 있고, 기본 주제가 되는 멜로디들도 알기 쉽게 만들어져 처음 듣는 사람도 금방 친숙해질 수 있답니다. 모두 네 곡이 남아있는 랄로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두 번째인 이 곡은 1874년 작곡됐는데, 1875년 초연 당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독주를 맡아 많이 알려졌어요. 이 곡은 오는 4월 21일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302회 정기 연주회 '에두아르 랄로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 삽입된 리게티의 음악

    죄르지 리게티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헝가리계 유대인 혈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하는 큰 비극을 겪었죠. 1949년 리스트 음악원을 졸업한 후 모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리게티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조국을 떠나 빈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 후 쾰른과 다름슈타트 등지에서 당시 최첨단의 전자음악을 접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에 다양성을 더합니다. 작곡과 함께 교육 활동에도 힘을 쏟았던 리게티는 1973년부터 1989년까지 함부르크 음악대학 교수로 일하며 많은 음악가를 길러냈는데, 우리나라 작곡가 진은숙씨도 그의 제자 중 하나입니다.

    리게티는 창작 초기 헝가리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전자음악에 영향을 받은 리게티는 아방가르드(avant-garde·실험적인 동시에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적인 독특한 리듬의 음악을 써냈죠. 또 아프리카 토속 음악을 작품에 적용시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난해하고 복잡한 성격을 가진 리게티의 음악이 대중에게 친숙해진 계기는 영화였어요. 20세기 최고 영화감독 중 하나라는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리게티의 작품 '아트모스페르'와 '레퀴엠' 등을 사용해 화제가 됐습니다. 영화가 지닌 신비한 분위기와 우주의 무한함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죠.

    리게티 음악을 실황으로 들을 수 있는 연주회들도 기다리고 있어요. 오는 22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독일 피아니스트 안톤 게르첸베르크 독주회에서는 까다로운 기교가 요구되는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 다섯 곡이 연주됩니다. 4월 19일과 20일 롯데 콘서트홀에서는 서울시향이 현대음악 해석의 권위자인 피아니스트 피에르로랑 에마르와 함께 리게티 대표작 중 하나인 피아노 협주곡을 선사합니다.

    랄로와 리게티는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작품을 접할 기회가 그다지 흔치 않아요. 올해가 의미 있는 해인 만큼 이 두 대가들 다채로운 작품 세계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기고자 :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52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