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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청소년 학교 10년째… "피하고 싶었지만 이젠 운명 같아요"

    윤수정 기자

    발행일 : 2023.03.20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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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밀학교' 이사장 가수 인순이

    "실버들을 천만사(千萬絲) 늘여 놓고도/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1978년 김소월의 시(詩)에 작곡가 안치행이 선율을 붙인 '실버들'을 데뷔곡으로 선보인 3인조 걸그룹 희자매는 당대 가요계를 그야말로 뒤집어놨다. TBC 인기가요 7주 연속 1위를 했다. 리드보컬이던 당시 스물한살 인순이(본명 김인순·66)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이듬해 솔로로 전향, '밤이면 밤마다' '친구여' '거위의 꿈'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사랑받았다. 폭발적 가창력으로 인정받은 가수. 1997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2010년 '꿈의 무대'로 불리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6·25참전용사들을 위해 노래했다. 그렇게 45년간, 디바(Diva)의 길을 걸었다.

    그런 그가 지난 10년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해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해 왔다. 2013년 강원 홍천군 남면의 농기구 창고와 한옥을 빌려 학생 6명, 교직원 9명으로 시작한 이 대안학교는 올해로 딱 10주년을 맞았다. 2018년 인근 폐교 부지로 이전하면서 교육부 정규학교 인가를 받았고, 현재는 학생 56명과 교직원 19명 규모로 성장했다. 해밀학교 전교생은 이제 3층짜리 기숙사에 머물며 수업을 듣는다. 학비와 기숙사비는 전액 무료. 재정은 이사장의 사비와 외부 후원, 교육비 지원 등으로 충당 중이다.

    지난 3일 홍천 해밀학교에서 만난 인순이는 "1회 졸업생들이 이불 밑에 숨긴 야식을 두고 개미들과 사투를 벌이던 1층짜리 낡은 한옥 기숙사 풍경이 엊그제 같다"며 웃었다. 그는 왜 다문화 교육자의 길을 택했을까.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처음엔 정말 하기 싫었어요."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6·25 참전 주한미군, 데뷔 초 곱슬머리를 가리고 방송해야 했던 혼혈 가수. 평생을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지금도 온몸에 '혼혈'이란 글자가 새겨진 것 같아요. 뭘 해도 그 이름이 조명됐고, 참 아팠죠. 그런데 왜 내가 굳이 다문화를 외쳐야 하나 싶었죠." 자신의 성공이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게 아니라는 감사함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은 있었지만, "200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방법을 양로원 설립으로 정했었다"고 했다.

    그 생각을 바꾼 건 2010년 우연히 튼 한 라디오 방송이었다. "다문화 학교 졸업률이 28%밖에 안 된다데요. 너무 낮아서 '어, 이걸 내가 높여야 하나' 싶었죠."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고민도 용기를 북돋웠다. 그는 특히 과거 딸을 미국에서 출산한 직후 국내 한 토크쇼에서 "원정출산했다. 욕해달라"고 밝혀 화제가 됐었다. "딸이 날 닮아 나처럼 고생하면 어쩌지. 그럼 유학 보내야 하나 고민했죠. 학교 세울 때도 넌 딸이 다문화인 걸 계속 감추길 원해? 아니, 당당했으면 해. 그럼 다른 다문화 가정 애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혼자만의 문답을 치열하게 거쳤어요." 그 결과 "어느 새 홀린 듯 해밀학교 부지를 알아보고 있었다"고 했다.

    학교 설립 후에는 "이젠 내가 해야만 위선이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전 다문화 2세이면서, 3세의 엄마니깐요." 특히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극복한다'란 표현을 싫어한다"고 했다. "극복이 아니라 평생 풀리지 않을 실타래를 하나씩 갖고 태어나 품고 가는 거예요. 저도 늘 엄마는 엄마 나라, 아빠는 아빠 나라가 있는데, 난? '내 고향은 그럼 태평양'인가 고민했고 여전히 흔들려요. 수업 때 '백의민족' 단어를 접하면 '아 거기에 내가 못생긴 점을 하나 찍었나' 슬펐고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 고민은 다문화 가정 부모님들조차 직접 겪은 적은 없으니 잘 몰라요."

    그가 해밀학교 개교 때부터 "다문화와 비(非)다문화 학생 반반씩 섞여서 교육받는 중등과정 학교"를 그려온 이유다. 현재 다문화 가정 32명 외에도 비다문화 출신이지만 한부모 가정 등 지원이 필요한 24명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중학교 사춘기 때 내 외관을 놀리던 아이들과 울고불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주 어릴 땐 제 외관이 남다른 걸 스스로는 잘 몰라요. 아이들 사이 섞여 있으려고만 하죠.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겐 제가 의미있는 하나잖아요. 제겐 그 사실이 자신을 마주 보게 하는 '거울' 같았죠."

    덕분에 해밀학교는 입학식 때마다 "난 베트남!" "난 한국!"을 외치며 각자 국적을 밝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한국어, 영어로 병행하는 정규 수업 외에도 방과 후 베트남어 등을 지원해 학생들이 최소 3개 국어 이상 할 수 있도록 주력한다. 서로 터놓고 다른 문화와 교류할수록,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인순이는 "10년 후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다문화 가정 300만시대'로 불릴 정도로 사회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미국인과의 만남은 국제결혼, 동남아 출신과 만나면 다문화 가정이라 말하는 편견이 현실"이라며 "무작정 '해주기만 하는' 지원은 오히려 반감만 살 수 있다"고 했다. "막 피가 나는 상처에 화장품만 바른다고 그게 예쁘게 변할 순 없잖아요. 그걸 닦아내고, 어떨 땐 딱지도 떼어내야만 새살이 돋죠. 다문화 아이들에게 기왕 생길 마음의 굳은살을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주는 게 제 첫 번째 목표입니다."
    기고자 :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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