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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114) 벌레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발행일 : 2023.03.15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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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는 교활함과 변덕스러움을 군주의 미덕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18세기의 조제프 푸셰는 군주도 아닌 주제에 그 미덕을 실천했다. 권력의 풍향에 따라 수시로 태도를 바꾼 그는 배신자, 모사꾼, 변절자의 상징이다.

    푸셰는 원래 신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자 수도사 옷을 벗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자기가 몸담았던 교회를 타도 대상으로 몰아세우면서 그 재산을 몰수하는 데 앞장섰다. 그 공로로 혁명 정부의 지역 대표자가 되었다. 그런데 교회 재산을 빼앗은 시민들은 갈수록 과격해졌다. 민심 변화를 읽은 푸셰는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세우고, 귀족들을 처형하는 일을 주도했다.

    혁명 정부는 재정이 빈약해서 화폐를 남발했다. 그 때문에 물가가 폭등하자 민심이 돌아섰다. 그러자 푸셰는 자기 상관인 로베스피에르에게 물가 상승과 공포정치의 책임을 씌워 단두대로 보냈다. 그 공로로 다음 정권의 경시총감직을 꿰찼다. 온갖 첩보를 수집하는, 정보 경찰의 시조였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정부 전복 계획은 알면서도 뭉갰다. 1799년 쿠데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푸셰를 창업 공신으로 대접했다.

    나폴레옹의 힘이 빠지자 푸셰의 버릇이 또 나왔다. 이번에는 외국과 손잡고 나폴레옹 축출 계획을 짰다. 1814년 왕정 복고 직후 루이 18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권력에서 멀어지는 순간 왕을 배신하고 다시 나폴레옹에게 붙었다.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귀환한 나폴레옹에게 "조금만 늦으셨다면 제가 반역죄로 죽을 뻔했습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연기에 마음이 풀린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를 위해 프랑스를 떠날 때 모든 권력을 푸셰에게 맡겼다.

    1815년 3월 19일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돌아왔다. 푸셰가 마중 나가서 머리를 조아렸다. 푸셰는 권력을 향해 껍질을 자주 벗었기에 별명이 벌레다. 벌레가 프랑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고자 :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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