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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경쟁력 갖춰야 '신(新) 애치슨 라인' 지킬 수 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발행일 : 2023.03.15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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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과학자 폰 노이만은 '컴퓨터 구조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천재 과학자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프로세서, 메모리,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범용 컴퓨터 구조 확립'에 있다. '폰 노이만 구조(Von Neumann Architecture)'로 불리는 컴퓨터 구조에서는 반도체 프로세서와 반도체 메모리가 물리적, 공간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 보통 CPU와 GPU라고 하는 프로세서는 계산을 담당하고, 계산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는 DRAM이라고 불리는 메모리에 저장된다. 이러한 구조를 채택하면서 컴퓨터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범용성과 다양성, 유연성, 그리고 상업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프로세서는 주로 인텔, 엔비디아, AMD, 애플, 구글 등 미국 기업들이 설계하고 생산은 대만의 TSMC에서 담당한다. 한편 메모리는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이 설계하고 생산한다. 결국 컴퓨터에 필요한 반도체의 산업 생태계가 지정학(地政學)적으로 분리되었다.

    초거대 인공지능인 챗GPT의 발전은 우리를 계속해서 놀라게 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챗GPT가 문서 작성뿐만 아니라 그림, 동영상, 소리, 음성과 음악을 함께 생성하고 편집도 해낸다. 이를 멀티모달(Multi-modal) 인공지능이라 부른다. 인간과의 소통 방법도 대화(Chat)에서 시작해서 표정과 몸짓 그리고 눈치로 발전한다. 이렇게 되려면 무한대에 가까운 데이터 기반 학습이 필요하고, 그 결과 필요한 컴퓨터 계산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컴퓨터의 프로세서와 메모리 사이에 고속 데이터 교환이 한계에 달하는 '데이터 병목현상(Von-Neumann Bottleneck)'이 발생한다.

    인공지능 학습을 위해서는 프로세서가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읽고, 그다음으로 수학 행렬 계산을 하고, 그 계산 결과를 메모리에 저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병목현상', 즉 데이터 기억 장소인 반도체 메모리의 지연 현상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읽고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 지연과 전력 소모가 일어난다. 데이터 병목현상을 최소화하려면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물리적으로 결합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개발된 메모리 구조가 광대역 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다. 이 구조에서는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초고층 주상 복합 건물처럼 층층이 쌓고,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엄청난 숫자의 초고속 데이터 연결선으로 이어 서로 데이터를 교환한다. 차세대 패키지(Advanced Packaging) 구조이다. 현재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도 이 구조를 갖고 있다. 이때 놀랍게도 반도체 메모리의 성능이 최종적으로 인공지능 컴퓨터의 성능을 좌우한다. 이러한 이유로 미래에는 반도체 메모리를 중심으로 한 컴퓨터 구조의 진화가 예상된다. 이를 '메모리 중심 컴퓨팅 구조(Memory Centric Computing Architecture)'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는 반도체 메모리 산업을 반드시 이 땅에서 사수(死守)해야 한다. 지정학은 지구상에도 있고, 컴퓨터 내부에도 있다.

    16세기 이후 한반도 주변에서 발생한 전쟁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대륙 세력'과 미국, 영국, 일본,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중심으로 한 '해양 세력' 사이의 패권 충돌 과정으로 볼 수 있다. 1592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임진왜란도 대륙 세력인 명나라도 원군을 파견한 국제적 성격의 전쟁이었다.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1950년 1월 발표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인 '애치슨 라인(Acheson Line)'도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때 대한민국과 중화민국(대만), 인도차이나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지금은 반도체와 인공지능이 신(新) 애치슨 라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바로 그 경계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과 평택을 지나가고 대만의 TSMC를 지나간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기업이 보유한 인재, 기술, 생산 인프라, 그리고 고객을 포함한 산업 생태계에 따라 정해진다. 그중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반도체 전문 인재의 확보이다. 반도체 개발은 보통 1000여 개에 달하는 단계를 거친다. 단계마다 석·박사 수준 전문 인력이 최소한 10여 명 필요하다. 반도체 메모리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산업, 시스템 반도체 산업까지 육성하려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최소 3만여 명 필요하다. 이 인력들이 있는 곳을 찾아 반도체 연구소와 공장이 세워진다.

    생산 인프라는 원활한 전기와 용수 공급을 포함한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의 경우,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할 때 시작해도 부지 정비 및 공장 건설에만 7~8년 이상 소요된다. 1~2년 단축이 절실하다. 반도체는 시간 싸움이 승패를 결정하는 타이밍 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투자 규제로 중국 생산 공장 라인에 대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보완 투자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잘못해서 국내 투자가 지체될 경우, 반도체 제조 경쟁력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 반드시 국가적 차원의 파격적 지원을 바탕으로 국가 반도체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반도체 메모리 산업의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國家)와 정치(政治)의 책무'이다. 고성능 반도체 메모리 산업은 반드시 한반도(韓半島) 내에 지켜야 한다. 그래야 2023년도 신 애치슨 라인을 지킬 수 있다.

    [그래픽] 2023 반도체 극동 방위선: 新 반도체 애치슨 라인 / AI 반도체 시장 성장 예측
    기고자 :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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