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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영화 '007 카지노 로얄'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주가 조작 세력과 맞서 싸운다. 테러 조직 자금을 관리하는 금융 전문가 르 시프르는 항공사 주식을 대규모로 공매도한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와서 판 다음 나중에 다시 사서 갚는 매매 기법이다. 일반적인 주식 투자와 달리 주가가 떨어져야 수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악당'은 주가가 떨어질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항공사가 보유한 항공기를 폭파해 주가를 떨어뜨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본드의 활약으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공매도 악당은 손실을 입는다.

이처럼 '악재'를 만들어 특정 기업의 주가를 하락시키려는 시도를 '베어 레이드(bear raid)'라고 한다. 미국 월가에서 약세장을 곰(베어)에 빗대는데, 인위적으로 주가 약세를 유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당연히 주가 조작이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처벌 대상이 된다.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가 나오지만 기업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정도지, '항공기 폭파' 같은 테러를 기획한 공매도 악당이 잡혔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는 공매도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시장을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급락하자 2020년 3월부터 공매도를 금지했다가, 2021년 5월 350종목에 대해서만 공매도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나머지 종목에 대해서는 공매도가 3년 가까이 막혀 있는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부 해외 투자 기관은 주가가 하락할 때 손실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서 투자금의 일정 부분은 공매도 투자를 하도록 하는 내부 규정을 두기도 한다"며 "여전히 많은 종목에 대한 공매도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한국 시장에 아예 투자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높은 시장 변동성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우려도 있다"며 공매도 재개를 망설인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는 개인 투자자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가가 실제 기업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오른 종목을 찾아내 공매도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불법 행위를 찾아내거나, 주가 조작을 견제하는 등 '순기능'도 있다. 미국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 부정이 밝혀지는 데 짐 체이노스 같은 공매도 투자자가 일부 역할을 했다.

지난 8일 금융 당국은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매도 규제를 위반한 외국계 금융사 2곳에 과징금 60억원을 부과했다. 지금까지는 1억원 이하 과태료만 부과됐는데, 이제는 고의성이 있다면 공매도 거래 금액의 10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실효성 있는 처벌도 가능해진 만큼 이제는 공매도를 완전 재개해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기고자 : 홍준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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