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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388) 강경의 팔괘정

    조용헌

    발행일 : 2023.03.13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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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讀萬卷書(독만권서), 行萬里路(행만리로)'.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해 본다. 책을 어느 정도 읽고 여행을 해야만 스파크가 튄다. 스파크가 튈 때마다 자기 아집이 깨지고 시야가 확장된다. 아집이 깨지고 시야가 넓어질 때 사는 게 자유로워진다. 머리에 든 것 없이 여행만 다니면 유람 수준에서 끝난다. 유람의 특징은 결과물이 없다는 점이다.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擇里志). 부동산 정보를 요약한 현장 보고서이자 현재까지도 나에게 참고가 되는 여행 콘텐츠이다. 이만한 책 없다. 자동차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었던 따라지 인생이 오직 '독만권서'의 내공만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녔으니 콘텐츠가 나올 수밖에 없다.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숙박과 밥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명문가 후손의 연줄 하나만 가지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의 방랑 생활 최종 정착지는 충남 강경의 팔괘정이었다. 강경은 서해안의 물류가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올 수 있는 조선 시대 물류의 거점이었다.

    화물과 사람을 실은 돛단배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포구. 그 풍경이 볼만하다고 해서 이름도 강경(江景)으로 짓지 않았나 싶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의 풍광 말이다. 팔괘정(八卦亭)은 이 강경 포구를 드나드는 돛단배들의 왕래를 언덕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이중환은 1751년 무렵. 말년의 환갑 무렵에 2년 정도 팔괘정에 머물면서 '택리지'를 집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 팔괘정이 노론의 맹장(猛將)이었던 우암 송시열이 지은 정자라는 점이다. 우암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의 공부처였던 임리정(臨履亭)이 150m 옆에 있다.

    스승을 흠모해서 스승의 정자 임리정과 똑같은 판박이, 즉 사이즈, 디자인, 내부 구조를 완전 똑같이 지은 정자인 것이다. '스승의 날'이 정해진 계기는 이 두 정자의 사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임리정 언덕 밑으로는 죽림서원이 있다. 죽림서원은 사계 김장생을 모시고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유계, 윤선거와 같은 5명의 충청 오현이 공부한 곳으로 유명하다.

    후일 노론의 핵심이 되는 사계학파(沙溪學派)의 핵심 아카데미였다. 노론의 본방 정자에서 패배한 남인의 낭인 이중환이 필생의 역작인 택리지를 집필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만남이란 말인가! 팔괘정 밑에는 황복 요리가 유명해서 필자도 자주 먹으러 갔는데, 이중환도 아마 택리지를 쓰면서 황복탕을 먹고 원고를 쓰지 않았나 싶다.
    기고자 : 조용헌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23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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