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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행동주의 펀드의 두 얼굴

    최규민 위클리비즈편집장

    발행일 : 2023.03.10 / W-BIZ B1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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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에는 이름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길에서 줍든, 땀 흘려 벌든 돈은 다 같은 돈일 뿐이라는 얘기죠.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돈은 바닥 모를 바다 같아서 명예도, 양심도, 진실도 그 안에 가라앉아 버린다"고 했습니다. 범죄나 마약 같은 불법의 영역을 제외하면 이런 격언이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은 아무래도 금융시장일 겁니다. 아무리 비윤리적이어도 돈 잘 버는 사람이 최고로 인정받곤 하는 곳이죠. 주가가 떨어져야 돈 버는 공매도 세력, 티끌만 한 이익을 악착같이 긁어모으는 모습이 마치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기는 것과 같다고 해서 '스캘핑(scalping)'이라는 별명이 붙은 초단타매매(HFT), 담배나 도박 같은 죄악주 투자 등이 그렇습니다.

    비정하고 무자비하기로는 벌처펀드(vulture fund)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겁니다. 곤경에 처한 국가나 기업을 집요하게 공략해 돈을 버는데, 그 수법이 시체를 파먹고 사는 벌처(대머리수리) 같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벌처펀드가 가장 악명을 떨친 건 2014년 아르헨티나 디폴트 위기 때입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 국채가 폭락하자 벌처펀드들은 헐값에 매입한 뒤 소송과 군함 압류 등을 통해 돈을 갚으라고 압박합니다. 이 일로 아르헨티나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으나 꿈쩍도 않죠.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원금에 이자, 배상금 등을 합쳐 46억5000만달러를 갚기로 합의합니다. 덕분에 벌처펀드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아르헨티나 국민은 더욱 곤궁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이때 앞장선 벌처펀드 중 하나가 이번 주 커버스토리에 행동주의 펀드로 소개한 엘리엇입니다. 요컨대 주주가치 제고를 외치는 행동주의 펀드와 약탈적 금융을 일삼는 벌처펀드의 경계선이 상당히 희미한 것이죠. 이런 펀드에 자금을 대는 건 대부분 국부펀드와 연기금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부펀드인 KIC가 엘리엇에 돈을 맡기고, 엘리엇이 한국 기업인 삼성을 공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집니다. 참으로 돈에는 국경도, 이름도 없나 봅니다.
    기고자 : 최규민 위클리비즈편집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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