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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석유' 구리… 신재생 바람에 귀한 몸 됐다

    손진석 기자

    발행일 : 2023.03.10 / W-BIZ B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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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탄소 핵심 원료로 가치 급등

    구리는 고대부터 인류에게 친숙한 금속이다. 동전, 놋그릇, 동파이프를 만드는 데 쓰이고, 청동 조각 같은 예술품에도 구리가 필요하다. 로봇, 자동차, 건축물, 통신 기기 등에도 두루 쓰이고 있어 구리 값 변화를 살피면 경기를 진단할 수 있다. 그래서 구리는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을 얻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구리의 가치는 녹슬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들어 구리는 더욱 '귀한 몸'이 되고 있다. 전기차 제작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에도 구리가 핵심 재료로 쓰인다는 점에서 미래형 소재로 각광받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글로벌 원자재 업계에서는 구리를 가리켜 '새로운 석유'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구리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량은 충분치 않아 가격 폭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리오프닝 호재로 구리 값 급등

    세계 최대 비철 금속 장터인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톤당 구리 값은 2021년 말 1만달러 안팎이었지만 작년 7월에는 7000달러까지 하락했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빠르게 끌어올리자 달러 강세가 두드러져 원자재 가격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반기에 수요가 살아나면서 최근 9000달러 가까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평균 구리 가격이 9750달러까지 오르고 내년에는 1만2000달러로 점프할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달러 강세가 완화될 경우 올해 2분기에 1만2000달러를 찍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코로나 봉쇄령을 탈피해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구리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중국은 세계 구리 소비의 54%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경기가 살아나면 빌딩·공장은 물론 전기 장비나 산업용 기계에 들어갈 구리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이미 LME에서 구리 재고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작년 10월만 해도 구리 13만7107톤이 LME에 쌓여 있었지만 지난달에는 6만5944톤으로 4개월 만에 재고가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최근 6개월 사이 대형 글로벌 구리 채굴 업체 주가를 보면 멕시코계 서던코퍼가 67%, 미국계 프리포트맥모런이 50%쯤 상승했다.

    구리 사용량,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4배

    구리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단순히 중국의 리오프닝 때문만은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기차 생산 증가와 맞물려 '소재계의 황태자'로 대우받기 때문이다. 주요 투자은행이나 원자재 애널리스트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탈(脫)탄소화가 진행될수록 구리의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구리는 풍력발전용 터빈이나 태양광 패널에 원료로 쓰인다. 이런 신재생에너지원에서 전기를 생성해 송전하는 과정에서도 막대한 분량의 구리가 필요하다. 뉴욕멜런은행의 원자재 펀드 운용 책임자인 앨 추 부사장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탄소 중립으로 가는 에너지 전환 추세를 보면 구리가 새로운 석유"라며 "(전기 배터리에 쓰이는) 리튬보다 구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른 속도로 시장을 키워나가는 전기차는 '구리 잡아먹는 하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구리개발협회(CDA)에 따르면, 차량 한 대 제작에 들어가는 구리양은 기존 휘발유·디젤 차량이 8~22kg 정도인 반면, 하이브리드 차량은 38kg, 플러그인 방식 하이브리드(PHEV)는 60kg, 순수 전기차는 83kg에 이른다. 내연기관 차량보다 전기차에 구리가 4배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기 버스의 경우 구리를 369kg이나 사용한다.

    전기차에 구리가 많이 필요한 이유는 전기 모터에 들어가는 코일에 듬뿍 쓰이기 때문이다. 차량 내 배터리 집전체로 쓰이는 동박도 구리로 만든다. 고찬영 NH투자증권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배터리의 전기에너지를 차량 내부 곳곳으로 옮기는 수단으로도 구리가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에 전기차가 많이 팔릴수록 구리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리는 탄피를 만들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므로 방위 산업의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탄피 재료는 구리와 아연의 합금을 사용하는데, 구리가 압력에 의한 변형이 적을 뿐 아니라 습기·산(酸)을 견디는 내성도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니콜러스 스노든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원자재 수퍼 사이클의 핵심이 구리이며,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남미의 구리 공급 불안정, 가격 급등 우려

    구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라도 공급은 넉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구리를 채굴하는 지역은 남미·아프리카의 오지에 집중돼 있다. 워낙 낙후된 지역들이라 충분한 자본을 투입하더라도 구리 채취용 대형 광산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공급량을 단기에 늘리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남미의 정치적 불안도 구리 값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세계 구리 생산량의 27%를 차지하는 1위 생산국 칠레에서는 정부가 구리 채굴 이익의 일부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렇게 되면 다국적 자본이 투자를 꺼려 생산량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압박을 받는다. 글로벌 광물 컨설팅 기업 CRU는 지난해 칠레에서 구리 콘퍼런스를 개최해 "향후 10년간 매년 구리 600만톤의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고 했다. CRU는 이 정도 공급 부족을 해소하려면 세계 최대 구리 광산인 칠레 에스콘디다 광산이 8개쯤 더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 구리 생산량의 10%를 떠맡는 2위 생산국 페루에서는 반정부 시위·파업이 자주 벌어지고 있어 생산이 일정하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컨설팅 업체 우드맥켄지의 로빈 그리핀 광물 담당 부사장은 CNBC에 나와 "2030년까지 구리 공급이 크게 부족하지만 (남미의) 정치 불안으로 언제든 구리 광산이 폐쇄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면 국가 간 '구리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덴마크 투자은행 삭소의 올레 핸슨 상품전략가는 "구리는 '녹색 에너지 전환'을 위해 각국이 막대한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정치적 자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 작년 하반기 이후 구리 값 / 런던금속거래소 구리 재고

    [그래픽] 차종별 구리 사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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