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Cover Story] '행동주의' 손탄 기업, 투자해도 될까

    곽창렬 기자

    발행일 : 2023.03.10 / W-BIZ B7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행동주의 펀드의 이 외침 '구원자'인가 '약탈자'인가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이자 '가치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1926년 철도에 관한 정보를 찾다 우연히 송유관 업체인 '노던 파이프라인'이 시가총액보다 많은 철도 회사 채권과 미국 국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노던 파이프라인은 1911년 시행된 반독점법으로 스탠더드 오일(엑손모빌의 전신)에서 쪼개진 회사 34곳 중 하나다. 당시 노던 파이프라인이 보유한 채권과 국채 가치는 주당 95달러였는데, 그레이엄은 회사가 이 채권들을 팔아 주당 90달러씩 주주들에게 나눠주더라도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노던 파이프라인의 전체 주식 가운데 5%를 사들인 뒤 회사 경영진에게 배당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송유관 사업에 대해 당신이 아는 게 뭐냐"며 거부했다. 주주총회에 참석한 그레이엄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레이엄은 노던 파이프라인 주식을 100주 이상 보유한 주주를 모두 만나 주식을 사들였다. 결국 2년 뒤 열린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대결을 벌여 이사회 5석 중 2석을 차지했다. 주총 결과에 놀란 경영진은 그레이엄이 요구한 대로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이 사건은 주주가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 행동주의'의 최초 사례로 평가된다.

    약 100년이 지난 현재, 주주 행동주의는 전 세계 자본시장에서 무시 못 할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 그레이엄처럼 기업의 지분을 확보해 단순히 배당금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이사진을 교체하는 등 경영에 적극 개입하고, 회사의 지배 구조까지 손을 대고 있다. 주주 행동주의를 주요 투자 전략으로 삼는 전문 펀드도 여럿 생겼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갈등도 국내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주주 행동주의를 보는 눈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모든 회사가 잘 관리된다면 (주주) 행동주의가 필요 없다"며 옹호했다. 반면 기업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익만 챙겨 나가는 하이에나로 보는 시각도 많다. 행동주의는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정의의 사도일까, 아니면 멀쩡한 기업을 망치는 약탈자일까. 행동주의 펀드가 손댄 기업의 소액주주들은 정말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약세장 때 활개치는 행동주의 펀드

    주주 행동주의는 1980년대 들어 이른바 '기업사냥꾼'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업사냥꾼은 특정 목적을 위해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는 투자자나 전문가 집단을 의미한다. 2005년 KT&G 지분을 인수해 2대 주주에 오른 뒤 배당 확대, 부동산 매각 등을 요구했던 칼 아이컨이 대표적이다.

    아이컨은 1985년 필립스 퍼트롤리엄이라는 석유 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더 비싸게 사들이지 않을 경우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회사는 요구를 받아들였고, 아이컨은 5250만달러의 수익을 거두고 떠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 오언 워커는 저서 '이사회로 들어간 투자자'에서 "칼 아이컨의 이런 행태로 인해 주주 행동주의는 '그린메일(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보유 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아 프리미엄을 챙기는 것)'이라고 불리게 됐고, 이기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빌 애크먼(퍼싱 스퀘어), 대니얼 러브(서드 포인트), 넬슨 펠츠(트라이언), 폴 싱어(엘리엇) 같은 억만장자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등장해 세계 금융시장에서 점점 더 목소리를 높여갔다.

    국내에도 1990년대 이른바 '장하성 펀드'로 알려진 '라자드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를 필두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가 여럿 생겼다.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GCI, 플랫폼파트너스, 얼라인파트너스 등이 대표적인 토종 행동주의 펀드로 꼽힌다.

    1920년대 시작된 주주 행동주의가 비교적 근래 들어 본격화된 건 지분 구조와 관련이 있다. 기업 설립 초기에는 상장 기업의 지분이 대개 설립자, 설립자 가족, 일부 투자자 등 극소수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행동주의 펀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1900~1949년 외부 펀드가 적대적으로 경영에 개입한 사례는 7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업이 나이가 들어 상속이나 증자, 주식 매도 등으로 최대 주주 지분이 희석되면 행동주의 펀드가 활개 치기 좋은 여건이 마련된다.

    [그래픽] 글로벌 행동주의 캠페인 수

    ▶ B9면에 계속
    기고자 : 곽창렬 기자
    본문자수 : 223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