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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님'은 조국도 연인도 아닌 조선 백성들"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3.03.10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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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집 '한국 근대시의…' 펴낸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정과리(65·사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자신만의 한국 문학사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평론집 '한국 근대시의 묘상 연구'(문학과지성사)에서 근대성이 자생했다거나 서양으로부터 이식됐다는 기존의 이론을 비판하며 '교섭사'의 관점에서 문학사를 다시 보자고 말했다. 서양과 교섭하며 근대로 나아갔던 과정과 그 역동성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근대의 씨앗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있었다고 말하는 건 자존심과 관련 있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책은 오늘날 한국의 뿌리를 좇으려는 시도다. 시작은 1919년 3·1운동의 좌절.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현실을 견디는 방식으로서 근대시가 태어났다는 설명이다. 김소월과 한용운이 역사적 고난을 마주하는 근대적 개인을 처음 그렸고, 이것이 1930년대엔 김영랑·이육사·정지용·이상으로 대표되는 4개의 흐름으로 나뉘었다. 구분 기준은 김영랑의 시에서 드러나는 '기다림'의 태도. 한편에 관조하며 기다리는 김영랑이, 반대편 끝에는 미래를 찾아 나서는 이상이 있다.

    정 교수는 "공무도하가, 향가부터 김영랑까지 한국의 시는 온통 기다림과 관련돼 있다. 다만 기다림이 의미 없다고 여기는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서는 것"이라며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을 사용했다"고 했다. 이분법적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용운의 시에서 '님'은 흔히 조국·부처와 같은 거창한 존재, 연인 같은 일상적 존재로 보는 관점으로 나뉜다. 그러나 '님'은 거창하면서도 일상적인 한반도의 조선 사람들을 가리킨다." 당장은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의 흐름을 제대로 못 보지만, 언젠가 근대인으로 발돋움할 존재로서 '님'을 그렸다는 뜻이다.

    문학사 정리는 정 교수의 오랜 꿈이다. 35년 전 한국 문학사를 한 문예지에 잠시 연재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훨씬 무르익었을 때 써야겠다"는 다짐에서다. 2015년부터 현직·예비 교사들을 상대로 문학을 가르치며 작업을 서둘렀다. "기존 문학사 해설이 부족한데, 교사들이 그 해설을 정답 외우듯 말하더라. 문학에 대한 열의와 능력이 반비례한다는 경험이 충격적이었다. 책을 통해 그들이 문학 작품을 쉽게 접하고, 우리의 뿌리를 학생들에게 전파했으면 한다."

    정 교수는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 문학은 쓸모가 없다는 깨달음을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다"며 "이번 책은 그 깨달음의 결정판"이라고 했다. 23년 연세대에 몸담은 그는 올해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문학사 정리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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