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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떼먹고 튄 X"… 단톡방(카카오톡 단체대화방)서 대놓고 빚독촉

    이민준 기자

    발행일 : 2023.03.10 / 사회 A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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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독해진 불법추심… 피해신고 2년새 2배, 소셜미디어 협박도

    지난 1일 밤 10시 30분쯤부터 전북 군산시에 사는 직장인 신모(43)씨의 전화기가 계속 울려댔다. 전화를 한 사람은 군산시에 있는 사채업체 직원. 신씨는 어머니가 협심증과 당뇨를 앓고 있는데 급히 병원비를 대느라 사채를 썼다고 한다. 그는 신용불량자라 금융권 대출이 막혀 돈을 구할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급전으로 20만원을 빌리면서 '일주일 뒤 이자 20만원을 더한 40만원을 갚는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썼다. 연간으로 따지면 이율이 5214%에 달한다. 원금은 갚았지만 이자 20만원을 아직 다 내지 못했는데, 그 여파로 협박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밤 10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전화를 100통가량 걸었다고 한다. 메시지도 수십 차례 보냈다. "네 XX(얼굴) 사진 건달 동생들에게 다 보내놨다"는 내용 등이었다. 신씨는 "아이가 넷인데, 애들 전화번호도 알아내 전화를 걸어 '학교 찾아가서 찔러 죽이겠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불황과 고금리 속에서 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나 취약 계층이 연 수백%의 이자를 매기는 사채업자 등 불법 사금융업체에 기대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은행은 물론 합법 대부업체도 대출해줄 자금을 외부에서 고금리로 구해와야 하는 상황인데, 대출 때 적용하는 법정 최고 금리(연 20%)가 고정돼 있어 수익을 남기기 위해 신용도가 높은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대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하지만 신용도 등이 낮아 돈을 구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불법 대출 시장에서 어쩔 수 없이 법정 최고 금리를 웃도는 고금리를 감당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대출 이후 각종 협박을 동반한 불법 추심(推尋·대출 원리금 등을 받아내는 일)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어 일상을 위협받고 있다. 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센터에 접수된 불법 추심 상담·신고 건수는 1109건으로 2020년 580건에서 2년 새 약 2배가 됐다.

    불법 추심에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한 신종 수법이 대거 등장하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대출받으러 온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휴대폰을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복사하거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출자의 지인들에게 욕설이나 모욕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전북 전주시에 사는 직장인 A(32)씨는 코로나로 직장을 잃은 지난해 8월 생활고로 대부 중개 사이트에서 만난 사채업자에게 20만원을 빌린 뒤 일주일 후 40만원을 갚겠다는 차용증을 썼다. 연이율 5214%에 달하다 보니 상환 일자를 제때 맞추지 못했다. 사채업자는 A씨를 압박하려고 미리 받아둔 A씨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이용해, 카카오톡에서 A씨의 지인 40명을 단체 대화방에 모은 뒤 "A는 몸 파는 X이다" "이 X이 내 돈 먹고 튀었다"라며 모욕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올해 들어선 채무자에게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요구하는 사채업자도 생기고 있다. 원래는 대출 때 재직 증명서를 요구하는데, 이 확인서에는 직장 의료보험 가입 이력이 담겨 현 직장은 물론 과거 일했던 직장이 어딘지도 알 수 있게 돼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불법 추심 피해자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는 B(35)씨는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보고 먼 과거까지 알아내 한 사람의 인간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식의 협박이 갈수록 점점 더 독해지고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이런 행동은 모두 불법 추심이다. 채권추심법에 따르면, 채무자를 폭행·협박할 경우 불법 추심이 된다. 독촉을 반복하거나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사이에 전화하는 것도 불법 추심에 해당한다. 가족·직장·지인 등 제3자에게 알리는 경우도 불법이다.

    전문가들은 취약 계층이 우선 불법 대출을 받지 않게 지원해야 하고, 불법 추심 행위자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수사기관이 엄정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 만난 불법 추심 피해자들은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달 초 한 사채업자에게 불법 추심을 당하다 경찰에 고소한 김모(41)씨는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더니 사채업자가 '우리는 대포폰·대포 통장 쓰니 경찰이 절대 잡을 수 없다'며 코웃음을 치더라"고 했다.

    [그래픽]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추심 상담 및 신고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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