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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는 숨찰 때·위급상황 대기조

우리는 평소에 뇌를 절반도 못 쓴다며 안타까워합니다. 사용률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뇌의 상당 부분은 유사시를 대비해 대기 중인 것이 맞습니다. 이는 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장기가 기능을 허투루 써서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능의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여유분으로 둡니다.

성인의 폐활량은 5L 정도지만, 평상시 호흡하는 양은 10%인 0.5L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숨이 찰 때를 대비한 여유분입니다. 안정 상태의 심장은 1분에 72번 뛰며 5L 정도의 혈액을 대동맥으로 내보냅니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심장이 빨리 그리고 강하게 뛰어 25L 이상의 혈액을 내보낼 수 있지요. 몸의 한정된 에너지를 다른 장기들과 함께 쓰려는 것이지요. 신장이나 간 등과 같이 장기의 일부를 기증할 수 있는 것도 여유분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동양화의 특징 중 하나는 여백의 미입니다. 여백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깊고 넓기 때문입니다. 각 장기가 가진 여유분을 여백의 미처럼 '비움의 미학'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무리한 생각일까요? 인간이 여러 포유류를 물리치며 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게 된 것은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생하는 배려심의 덕이 큽니다. 그 배려심은 우리 몸의 각 장기가 여유분을 서로 나누며 협력하는 신체 작동 시스템에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우리 몸에 삶의 지혜가 있는 거지요. 기고자 : 나흥식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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