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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만년필을 선물받았다. 내 이름이 각인된, 생애 첫 만년필이었다. 평소 필기구에 관심이 많지만, 만년필에는 어쩐지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잉크 교체에 대한 부담감과 펜촉이 주는 낯섦 탓이었다.

선물받은 펜을 손에 들고, 잉크 카트리지를 넣는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예상대로 필기감은 낯설었다. 촉이 망가질까 봐 괜히 걱정되었다. 잉크가 손에 묻어나 여러 번 씻어낸 적도 있었다. 어색함과 불편함을 견디면서, 몇 번 더 사용해 보기로 했다. 만년필로 글씨를 쓸 때면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명이 필요한 서류에만 만년필을 쓰다가, 이제는 작은 메모를 할 때도 볼펜 대신 사용한다. 여러 번 쓰다 보니 어색함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쓰고 있다'는 감각이 더욱 명료해진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내가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책장을 넘길 때의 촉감, 책의 두께가 주는 부피감, 종이마다 조금씩 다른 냄새. 내게 독서는 그 모든 감각이 통합된 경험이다. 전자책에도 책장 넘기는 소리가 탑재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자연스럽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편리함도 좋지만, 몇 번 실패해야 능숙해지는 아날로그 물건에 자주 매력을 느꼈다. 사용법만 익숙해지면, 불편함쯤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들이다. 어쩌면 아이패드와 전용 펜슬을 사용하는 시대에도 만년필이 단종되지 않는 이유는 나처럼 편리함보다 아날로그적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꽤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고자 : 전지영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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