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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113) 여성의 날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발행일 : 2023.03.08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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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옛날 고된 시집살이를 참으며 남편을 뒷바라지하던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과거에 급제하자 기생과 놀기 바빴다. 억장이 무너진 아내가 한을 품고 목을 맸다. 남편이 뒤늦게 후회하지만, 가정은 이미 파탄 났다. 우리나라 민요 '진주 난봉가'의 줄거리다.

    여자의 한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가정뿐 아니라 일터에도 있다. 어느 날 왕이 왕비의 시녀를 은밀히 불러 잠자리를 강요한다. 마수를 피할 길 없는 시녀는 '직장 내 성폭력'을 체념하고 사생아를 임신한다. 아기의 아빠를 밝혔다가는 왕한테 죽거나, 왕비한테 죽는다. 시녀는 임신 사실을 꼭꼭 숨겼다가 출산 직후 아기를 강에 던진다. 하지만 발각되어 재판받는다. 그 재판의 재판관은 왕이다. 시녀는 자기의 삶과 죽음을 노리개로 삼는 왕을 저주한다. 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영아 살해범으로 몰아 참수한다.

    이것은 제정 러시아의 첫 번째 차르였던 표트르 대제와 황실 시녀 사이의 야화다. 그 일로 표트르는 오늘날 푸틴만큼이나 욕을 먹었다.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찬사 뒤에 붙어 있는 어두운 그림자다.

    그 사연이 스코틀랜드까지 알려졌다. 그리고 '메리 해밀턴'이라는 이름으로 민요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한이 서려 있는 노래다. 1960년 미국 민중 가수 존 바에즈가 그 민요를 구슬프게 노래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 노래는 한국으로 흘러와서 1972년 대학생 가수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로 재탄생했다.

    제정 러시아 여성들의 삶은 유난히 팍팍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민생고에 지친 여성들이 생필품 부족을 호소하며 시위를 벌였다. 걷잡을 수 없이 시위가 확산하자 마침내 니콜라이 2세가 하야했다. 러시아 제국의 붕괴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가정뿐 아니라 제국도 무너진다. 시위가 시작된 3월 8일을 오늘날 세계는 '여성의 날'로 기리고 있다.
    기고자 :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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