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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4) 가짜 주인공, 진짜 주인공

    김규나 소설가

    발행일 : 2023.03.08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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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나의 마술 극장에 와 있습니다. 당신이 탱고를 배우고 싶든, 장군이 되고 싶든, 알렉산더 대왕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든, 모두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하리씨, 당신은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까맣게 잊었어요. 당신은 내 작은 극장의 유머를 깨뜨리고 추한 짓을 했습니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장기짝을 다루는 법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중에서

    마약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 근심 하나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향기로운 꽃밭에 나른히 누워 햇빛의 애무를 받는 느낌일까? 일반인에게 마약이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마피아, 짧은 깍두기 머리에 용 문신을 한 폭력배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유명인들에겐 마약의 유혹이 훨씬 가까운 데 있는 모양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무대 공포증이 있어도 카메라와 대중 앞에서 웃어야 한다. 주삿바늘 공포증을 견디고서라도 더 예쁘게, 더 젊게 보이도록 시술받는다.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도 평범하지 않다. 촬영 기간 내내 반항아, 폭력범, 살인자의 심리에 몰입한다. 꼭 악역이 아니더라도 내공이 깊지 못하면, 배역과 본성 사이의 괴리감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다.

    사회의 모순을 냉소하며 고립된 채 살아가던 하리 할러는 관습에 길들여진 인간과 본능을 잃지 않은 이리가 내면에 공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두 인격 사이의 거리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꿈꾸기도 하고 마약에도 손을 대던 그는 마술 극장에서 자기 안에 숨어 있던 다양한 자아를 마주한다. 그들과 함께 웃고 즐겁게 춤출 때 인생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수많은 자아를 연기하는 유명인들은 스포트라이트에 눈이 멀어 자기를 잃기도 한다. 그들만 위태로운 건 아니다. 소설 문장처럼 삶은 종종 '무시무시한 공허와 적막감, 끔찍한 위축 상태, 사랑받지 못하고 절망한 자의 텅 비고 황량한 지옥'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스스로 견디고 이기며 살아간다. 그들이야말로 삶의 주인, 인생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다.
    기고자 : 김규나 소설가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09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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