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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전쟁·폭력 후유증 치료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발행일 : 2023.03.08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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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살(킬링필드) 지켜만 봤던 캄보디아, '분노의 날(5월 20일)' 지정했죠

    "여보, 사람들이 나보고 미쳐가는 거 같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1년을 넘어섰어요.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AP통신은 우크라이나에 주둔한 러시아 군인들이 본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한 대화 내용을 입수해 공개했어요.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 주둔한 러시아 병사 막심은 아내에게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는 하소연과 함께 "여기 같은 지옥을 본 적이 없다.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라고 전했대요.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처럼 생명·신체에 해(害)를 입는 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도 문제를 겪게 돼요. 이런 트라우마가 계속되면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질병 상태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발전할 수 있어요. 따라서 전쟁·내전과 같은 폭력적 사건이 지속된 국가들은 국민의 트라우마와 PTSD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노력이 전개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미국: 국립 PTSD 센터 설립

    전쟁이나 내전에 참여했던 병사들은 집에 돌아와도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알코올 또는 약물에 의존하거나, 폭행·자해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죠.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이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되는 겁니다.

    미국은 베트남전·걸프전·아프가니스탄전 등에 참전하면서 많은 군인이 희생됐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미군 병사들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죠. 미 보훈부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 중 30%가 이러한 증상을 겪은 걸로 추정하고 있어요. 걸프전은 12%,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던 군인은 11~20%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하죠.

    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이상 증세를 알고 나서 보훈부 산하에 '국립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센터(National center for PTSD)'를 설립했어요. 센터는 참전했던 군인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특히 PTSD와 이것이 일으키는 수면장애·알코올중독·자해 등 다양한 증상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깊게 연구해 어려움을 겪는 군인들을 돕고 있어요. 먼저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가족 관계 회복 및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안내도 제공하고 있죠.

    또한 미국은 전쟁뿐만 아니라 큰 재난을 겪은 국민을 위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관리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어요. 2001년 9·11 테러 직후 피해자들은 물론 목격자들도 정서적 지원을 받도록 했는데, 현재까지 치료 지원이 이어지고 있대요.

    북아일랜드: 평화 전문가 양성

    북아일랜드 지역의 신교도와 구교도들은 1000년 이상 갈등을 이어왔어요. 특히 1969년부터 1998년까지 약 30년간 3600여 명이 폭탄이나 총기 테러로 사망했고, 3만명 이상이 심각한 신체적 상처를 입었어요. 1998년 4월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긴장과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한 마을 안에 신교도와 구교도가 사는 지역을 가르는 벽이 있고, 각 지역에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보여주는 벽화들이 남아 있어요. 서로 가는 병원이 다르고, 90% 이상의 아이가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학교에 다니면서 서로 섞이지 않으며 살아가요.

    북아일랜드에서는 오랜 내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사회 치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먼저, 직접 피해를 본 유가족과 피해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요. 또 과거·현재의 갈등이 미래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어린이와 청소년, 대학생(이른바 '갈등 후 세대')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죠. 트라우마 극복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체가 건강한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령층을 돕는 사회적 기업도 만들어져 있어요.

    대학 같은 교육기관에도 정치·종교·지역을 아우르는 평화·화해에 관한 학위 과정이 개설돼 있죠. 이른바 사회 치유의 리더십을 키우는 '평화 전문가 양성 과정'입니다. 국민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사회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캄보디아: 불교 의식 활용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 개혁을 명분으로 삼아 정권 차원에서 반대파에 대한 잔인한 학살이 이루어졌어요. 일명 '킬링필드'라고 부르는데, 1976년부터 1979년까지 150만~200만명이 죽었지요.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이들은 마음껏 슬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억제된 슬픔과 상실감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게 됐어요. 2011년 유엔(UN) 캄보디아 특별재판부에 따르면, 캄보디아 인구의 약 3분의 1 정도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기준에 맞는 환자들로 조사됐다고 해요.

    2009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캄보디아 정부와 UN의 공동 재판정인 'UN 캄보디아 특별재판부'는 재판을 통해 '킬링필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고 당시 고통을 받았던 개인·가족·사회 전체를 위로하고자 했어요. 캄보디아 정부는 사회적 치유를 위해 매년 5월 20일을 '분노의 날'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어요. 또 과거 크메르루주 정권의 잘못을 알리는 기념관과 기념탑을 건립하고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있죠.

    민간기구인 캄보디아 기록센터는 크메르루주 관련 과거사를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기면서 국민의 상처와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양한 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비정부기구) 중심의 시민사회 활동도 전개되고 있지요. 국민 상당수가 불교 신자라는 특성을 고려해, 승려들이 주도하는 평화 행진과 불교 의식이 치유 활동에 활용되고 있다고 해요.
    기고자 :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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