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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초유의 실적 부진 상황에도 작년 수준인 53조원 시설 투자키로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해야겠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 기업사(史)에서 '퀀텀 점프' 순간 중 하나로 꼽히는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삼성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손을 댔지만 1983년 '도쿄 선언' 이전까지는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미국 인텔은 이 회장을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했고, 당시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에선 '한국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칼럼도 나왔다.

이병철 회장은 당시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에서 "무자원 반도인 우리의 자연적 조건에 맞으면서 상대방에게도 필요한 제품을 찾아야 한다"며 "이것이 곧 고부가가치, 고기술 상품 즉 첨단 기술 상품인 반도체"라고 강조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통상 18개월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고, 그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 10년 뒤인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에 올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사업은 세계 1등이 됐지만 최근 초유의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며 한국 반도체 위기론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삼성 수뇌부는 '선행 투자' 전통을 이어가며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삼성전자는 당장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지난해(53조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집행키로 했다. 인위적인 감산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격적인 R&D와 설비투자라는 정공법으로, 초격차 기술력과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무역 갈등,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우리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악화하고 있지만, 우리 기업들은 도전과 혁신정신으로 위기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 같은 의지를 담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구성원을 '프런티어(개척자)'로 지칭하면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장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다가오는 위기를 두려워하며 변화를 뒤쫓기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이끌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2023년을 '도전을 통한 신뢰와 변화를 통한 도약'의 한 해로 삼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려 한다"며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객가치'를 화두로 삼고 "2023년은 '내가 만드는 고객가치'를 찾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새로운 롯데'를 목표로 삼고, "새로운 영역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실적 개선에 집중하기보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주요 그룹 총수들도 올해가 어렵지만, 각자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한 단계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이미 알려진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며, 위기라는 말 속에는 기회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며 "위기 속 성장기회 선점과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 노력을 착실히 해 나가면 포스코그룹은 더 크고 강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운 극한의 상황에서도 멈추거나 움츠러들기보다는 내일을 꿈꾸며 백 년 한화를 향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며 "우리가 오랜 시간 키워온 방산, 에너지 사업은 국가의 존립을 위해 반드시 자립이 필요한 사업이 됐다. 국가를 대표하는 이러한 사업군을 지속해 만들고 키워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고자 :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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