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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감염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고령의 할머니는 가쁜 숨을 내쉬느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고열과 기침까지 동반하는 전형적인 양상이었다. 격리 치료실로 들어간 환자는 쇠약한 상태였지만 구급차로 혼자 왔다. 돌보던 딸도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다. 3일 전부터 온 가족이 감염으로 자가 격리 중이었다. 보호자는 유선상으로 처음에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으나 점차 숨을 가쁘게 쉬셔서 신고했다고 했다. 일단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고 보호자는 필요한 처치를 모두 부탁했다. 수화기 너머로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맥이 빠르고 호흡이 거칠었다. 엑스레이도 전형적인 폐렴이었다. 산소를 투여해도 산소 포화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흉부 CT는 바이러스가 양쪽 폐를 전부 점령한 것 같았다. 점차 의식이 악화되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선의 의학적 처치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심정지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고령이라 공격적인 치료를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분들의 의견을 모아 연락을 주시지요." 잠시 뒤 딸은 전화로 답했다.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를 편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할 일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이미 처치는 대부분 마친 상태였다. 집중 치료실에서 코로나 병상을 기다리다가 심정지가 발생하면 사망 선언을 해야 했다. 한동안 할머니는 산소 마스크를 쓴 채 집중 치료실에 누워 있었다. 문득 심박수가 떨어져 확인하자 창 너머의 할머니는 거의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스테이션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로 경과를 설명했다.

"사망이 임박했습니다. 곧 돌아가실 겁니다." 건너편에서 슬픔의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모니터의 심박이 멈춰 평행선을 그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아 밤을 새워 기다렸어요.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직 안 돌아가신 거니까, 마지막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심장은 이미 멈춰 사망 선언만이 남았다. 적어도 망자의 모습이라 무엇인가 들을 상태는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치료실에 들어갈 시간이 필요합니다. 1분 뒤 집중 치료실로 전화를 걸어주세요."

나는 방역복을 챙겨 입었다. 집중 치료실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유선 전화기가 있었다. 그 전화를 사용하는 환자는 처음이었다. 치료실에 들어가자 전화기가 울렸다. "잠시 뒤 말씀하세요. 3분쯤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테이블 앞으로 당긴 뒤 동그랗게 말린 전화선을 길게 늘렸다. 수화기는 다행히 할머니의 귓가에 닿았다. 터져 나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았다. 심전도는 평행선을 그려 고요했고 먼 수화기의 음성만이 방역복을 뚫고 불분명하게 들렸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핏기 없는 얼굴이 수화기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격한 음성에도 얼굴은 어떤 반응 없이 고요하게 듣기만 했다. 나는 5분 뒤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말씀을 전부 전달하셨습니까?"

한참을 울다 간신히 멈춘 목소리였다.

"네. 이제 되었습니다."

"환자분은 방금 떠나셨습니다. 이제 시신을 정리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답해 주세요. 어머니는 제 말을 분명히 들으셨지요?"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답했다.

"…네. 모두 듣고 떠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려해주셔서…."

전화가 끊겼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내가 떠나보낸 이 중에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망자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무용한 일이라고는 없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전달해야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랑의 감정과 그것이 쏟아져 나오는 마지막 순간,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숨을 거두고, 또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사랑한다. 숨이 막히는 질병과 아득한 공간이 가로놓여도 그 사실은 전달되어야만 한다. 그것이면 모든 게 충분하다. 기고자 : 남궁 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99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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