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정부, 인력난에 해외 일손 늘린다지만… 열악한 '불법 숙소' 여전

지난달 23일 전북 고창군 흥덕면 일대에서 불법 체류하며 비닐하우스 등에서 농사일로 돈을 벌던 태국인 부부가 한 단독주택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보일러가 고장 난 열악한 집 안에서 화로에 숯을 넣어 난로처럼 쓰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본국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유해는 2일 태국으로 송환된다.

정부는 인구 감소와 국내 곳곳의 인력난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늘릴 방침이다. 작년 12월 18년 만에 고용허가제를 개정해 제조업·농어업·건설업 등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체류 기간을 종전 최대 4년 10개월에서 10년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E-9 비자(비전문취업)를 받고 입국해 전국 곳곳의 농장·공장·공사 현장 등에서 단순 노무를 주로 맡는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는 작년 말 기준 전국 약 27만명에 달한다. E-9 비자 신규 입국자는 코로나 사태 때는 국내에 많이 들어오지 못했지만 작년 9만명으로 늘었다. 정부는 올해는 11만명으로 더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숨진 태국인 부부처럼 주택으로 보기도 어려운 열악한 불법 건축물에서 살며 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인권 등 향후 큰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오후 6시쯤 찾아간 경기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 시금치와 상추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수십 동 사이 검은 천으로 덮인 비닐하우스 하나가 보였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컨테이너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10㎡(약 3평)짜리 방 하나가 있었다. 지난해 네팔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A(29)씨의 숙소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누울 잠자리와 부엌만으로 빽빽한 이곳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이 방에 묵기 위해 그는 월급 180만원 가운데 20만원을 농장주에게 낸다.

3개월 전 베트남에서 경기도 한 농장으로 일하러 온 B(30)씨의 숙소도 비닐하우스 안에 조립식 패널로 엉성하게 만든 13㎡짜리 단칸방이었다. 그는 이 방에서 고향 친구와 둘이 산다. 빨간 내복을 입고 문을 연 B씨는 지난달 3만5000원짜리 온열 난로 하나를 샀다. 불이 날까 걱정도 되지만 그는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 너무 추워, 어쩔 수 없어요"라고 했다. 화장실은 비닐하우스에서 30m 넘게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 한 곳이 전부다. 경기 북부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6년째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C(41)씨 숙소도 비슷하다. 지난달 13일 살펴본 컨테이너 속 그의 방 크기는 가로 1.5m, 세로 2m에 불과했다. 키 165㎝인 C씨가 침대에 누우면 발이 벽에 닿는 수준이었다.

외국인 근로자에게 숙소를 제공해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다. 하지만 농장이나 공장 운영자 등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숙소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면 주택이나 기숙사 등이 아닌 불법 개조한 컨테이너 등에서 머물게 하는 일이 많다. 고용노동부는 "숙소를 제공한다"고 근로자를 유치해 근로계약서를 써 놓고 불법 건축물 등에 살게 하는 경우 과태료를 매기고 있지만 모든 사업장을 단속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또 E-9 비자를 받은 근로자들은 입국 때 일할 업종·지역 등을 배정받는데, 배정된 곳을 바꾸려면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때문에 열악한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다고 한다.

농장이나 공장 운영자들은 "고물가에 불황까지 겹쳐 어쩔 수가 없다. 우리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주장한다. 수도권에서 근로자 4명을 고용하고 있는 농장주 양모(69)씨는 "정부에서 근로자 기숙사 짓는 데 5000만원 정도를 지원한다는데 그걸로는 턱도 없을뿐더러 기숙사 허가가 나오는 땅 구하기도 어렵다"며 "원룸을 구해주자니 월세를 감안하면 외국인을 안 쓰는 게 낫다"고 했다.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는 "파견되는 곳에 살 곳이 없는데 정부가 체류 기한만 늘리는 건 숙소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이들이 사람답게 지낼 공간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 매년 새로 입국하는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 기고자 : 유재인 기자
본문자수 : 206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