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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은 부처의 제자이면서 수행을 통해 깨달은 자를 말한다. 2012년 국립춘천박물관장 시절, 수장고에서 처음 만난 나한상들은 머리만 있거나 신체 일부만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속, 강원도 영월 창령사 터에서 500여 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땅속에 잠들어 있다가 2001년 우연히 발견돼 그 존재가 알려졌다.

오백 나한상 중에 317구가 발굴됐고 온전한 30여 나한상은 상설 전시실에, 상처투성이 나한상들은 어둡고 차디찬 수장고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나한상을 보는 내게 그들의 앓는 소리가 먹먹하게 전해져 왔다. 하루빨리 이들이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나가서 세상 사람들과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박물관 큐레이터들의 정성으로 나한상들은 흩어졌던 몸과 머리가 하나가 됐다. 2018년 춘천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나한상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살짝 다듬었을 뿐인데 살아 있는 표정이 드러났다. 웃음을 참지 못해 '빵 터진' 나한, 슬픔을 가눌 길 없어 울음을 머금은 나한, 고민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인 나한, 앳된 얼굴의 미소년 나한, 주름투성이의 노인 나한도 다 만날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미소를 지은 나한상이 유난히 많아 보는 우리도 행복하다. 그들도 아픔을 겪고 일어선 경험 때문인지 찾는 사람들을 보듬어 주거나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것도 남다르다. 여러 인간 군상의 감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나한상 속에서 나를 닮은 나한을 찾아 인연을 맺어볼 수도 있다.

나한은 서울과 부산, 영월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호주에 다녀왔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강원도와 전라도의 나한이 처음으로 만났다. 새봄에는 제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도 관심을 둔다고 하니 머지않아 미국 여행도 갈 것 같다. 힘없이 수장고에 누워있던 나한상이 나의 염원대로 세상 밖으로 나와 가는 곳마다 위안과 감동을 주는 모습이 대견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는 어떤 나한의 모습을 닮아갈까. 비록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있지만, 양손에 둥근 보주를 들고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가득한 나한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기고자 : 최선주 동양미술사학회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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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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