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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 3편, 신카이 마코토 감독 '스즈메의 문단속' 3월 8일 개봉

세상에는 문(門)이 많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 출퇴근이든 등·하교든 우리는 하루에도 숱하게 문을 열고 닫는다. 유리창부터 지하철, 엘리베이터까지 문은 이쪽과 저쪽을 가른다.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다 눈앞에서 문이 쾅 닫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절망할 일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문단속이라니, 문을 닫아 잠그지 않아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는 뜻일까.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등 그의 전작들도 제목만으로 궁금증을 자아냈다. 참고로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속도다.

영화는 규슈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고교생 스즈메가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라고 묻는 청년 소타와 마주치며 시작된다. 그의 뒤를 쫓아간 소녀는 산속 폐허에 덩그러니 남겨진 낡은 문을 발견한다. 뭔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붉은 연기가 치솟고 마을에 재난(지진)이 닥친다. 스즈메는 소타를 도와 가까스로 문을 닫고 재난을 봉인하지만, 정체불명 고양이의 저주를 받은 소타는 다리 하나가 없는 의자에 갇혀버린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의자가 돼 뒤뚱거리는 소타와 함께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터지는 재난을 막느라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는 이야기다. 이 문단속의 여정은 고베, 도쿄 등을 지나 고향에 닿는다. 12년 전 스즈메가 재난(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잃어버린 엄마를 마주하게 하고, 깊게 팬 상처마냥 들러붙어 있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다. 튀르키예 지진이 보여주듯 재난은 내일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관객 1000만여 명을 모았다. '색과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 트리플 천만 감독에 등극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 극장 밖 일상을 잊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서정적인 색채와 섬세한 언어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신카이 월드로 관객을 데려간다. 자연 풍경과 재난을 시각화하는 솜씨에 놀란다. "다녀올게요" "다녀왔습니다"가 얼마나 아름다운 인사말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신카이 감독은 버려지거나 폐허가 된 쓸쓸한 장소들을 애도하는 감성 판타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성장이 멈춘 시대에 '이 나라가 이대로 쇠퇴해 끝나버리는 것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스즈메를 집과 가족을 잃고 이모가 거두어 기른 소녀로, 소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의자로 각각 설정하면서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담아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마주해야 할 것을 마주하고 확실히 매듭지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삶에 소중한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 받았다는 관점이 따스한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어떤 면에서는 부럽고 사치스러운 영화다. 한국에는 집안 단속, 자식 단속도 못 하는 집이 많은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투르게네프 소설 '첫사랑'을 읽는 10대가 주인공이고, 서정적 묘사에 집중하고, 남녀가 지나가다 뒤늦게 알아보는 장면 등 감독의 시그니처(인장)는 여전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21년 만에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12세 관람 가. 3월 8일 개봉. 기고자 :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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