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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러 철군 결의안' 141국만 찬성 가결… 1년전과 똑같아

1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친(親)러' 대 '반(反)러' 진영으로 나뉜 국제 정세가 고착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장기전으로 끌고 갈 경우 미국 등 서방 사회가 현재의 상황을 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은 23일(현지 시각) 미 뉴욕 본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열린 긴급 특별총회를 통해 러시아에 대해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193개 회원국 중 한국과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자유민주 진영을 중심으로 한 141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 시리아 등 7국이 반대했다. 중국과 인도 등 '중립'을 표방하며 기권한 나라는 32국, 투표에 불참한 나라는 13국이었다. 이날 통과된 결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을 위해 러시아가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으로 철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명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날 투표 결과를 분석해 보면,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한 서방의 승리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개전 직후인 지난해 3월 유엔이 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첫 결의안을 투표에 회부했을 때에 비해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1년 전과 찬성 141국은 똑같지만, 당시 반대국이 5국이었던 반면 올해 니카라과와 말리가 가세해 오히려 반대가 7국으로 늘었다. 기권은 35국에서 32국으로 약간 줄어들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연대는 공고하게 유지됐지만, 전쟁의 참상을 규탄하는 각종 여론전에도 불구하고 반(反)러 전선을 더 확대시키지는 못했다"고 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도 "그때그때 이해관계에 따라 러시아 혹은 서방 편에 서겠다는 '관망자'의 비중이 워낙 커 러시아의 고립이 달성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년간 유엔에서 통과된 반(反)러시아 결의안 5건 표결은 대부분 비슷한 구도로 펼쳐졌다. 오히려 지난해 4월 유엔총회가 유엔 인권이사국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려고 실시한 결의안 표결에선 찬성이 93국으로 급감하고 반대가 24표로 늘기도 했다. 현재 유엔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 책임을 묻기 위해 2차 대전 이후 나치 단죄를 위해 설치했던 뉘른베르크식 특별법정을 세우는 안을 회람 중이나, 부결 가능성이 높아 미국이 투표 추진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의 반러 전선이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는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와 아시아 등에서 "이 전쟁은 서방의 전쟁일 뿐이다" "우리 이익이 침해받지 않는 한 자원·군사 대국 러시아와 등져서 좋을 것 없다"와 같은 여론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고 NYT는 전했다.

미 싱크탱크 실버라도 폴리시 액셀러레이터의 각국 대러 교역량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에 자동차·기계·반도체 등 수출량을 크게 늘려 기존 서방의 대러 수출량을 거의 채우고 있다. 인도는 값싼 러시아산 무기와 석유를 대거 수입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초 올해 러시아 경제가 2.3% 후퇴한다고 전망했다가 '0.3% 성장'으로 수정했다. 러시아 경제가 좋지는 않아도 전쟁을 지속할 수준은 된다는 뜻이다. 브라질과 아랍에미리트연합,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스위스처럼 유엔에선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찬성하면서도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되레 교역을 늘린 나라도 속출하고 있다.

한편 주요 7국(G7)은 24일 우크라이나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화상회의를 열고 200여 개인과 기관이 망라된 대러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도 이날 대러 제재조치를 위반한 러시아와 중국 등의 90여 기업에 대해 수출 통제를 하고, 러시아산 금속·광물 등 100여 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기로 했다. 또한 20억 달러(약 2조6000억 원) 규모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지원한다.

[그래픽] 유엔 총회 러시아 철군 요구 결의안 표결 기고자 :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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