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항공법은 비행기 이륙 전에 기내 안전 안내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전에는 승무원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대부분 비디오로 대체되었다. 그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들은 수십, 수백 번 시청한 지루한 영상이다. 그 시간 동안은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고, 영화 상영도 중단된다. 안전벨트 매고 꼼짝없이 앉아서 영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수백 명 승객의 5분을 모두 합하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에어프랑스를 비롯한 몇 항공사들이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안전 비디오의 콘텐츠를 재미있고 다양하게 만든 것이다. 에어프랑스는 마치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의상 디자인과 프랑스 특유의 색감과 감성으로, 뉴질랜드 항공사는 본국에서 촬영한 영화 '반지의 제왕'을 패러디한 서사적 영상으로, 스위스 에어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브리티시 에어는 유명인들이 오디션을 보는 형식으로 편집해서 승객의 시선을 끌었다.

이 비디오들은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수단으로도 제격이다. 실제로 콴타스(Qantas) 항공은 사막이나 포도밭, 푸른 바다와 같은 광활한 호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칠레의 라탐(Latham) 항공은 남미의 유적지<사진>와 화려한 공예품들, 그리고 우리나라 국적기는 아이돌을 등장시켜 K팝을 강조한 영상으로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고 있다. 마치 이 짧은 틈새 시간에 국가들이 자국 홍보를 위한 디자인 월드컵을 하는 느낌이다. 이견이 있겠지만 현재 우승은 프랑스, 4강은 칠레·뉴질랜드·스위스·영국 정도다. 한국은 16강, 미국은 32강 정도로 평가하면 될 것 같다.

수준 높은 영상미를 자랑하는 이 비디오들은 재미와 다양성으로 승객의 쾌적함과 만족도를 높여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간 사이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숨겨진 시간을 찾아내고 틈틈이 쪼개진 시간의 조각을 즐길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생각해 본다. 기고자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98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