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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본 뇌의 숲에서 860억개 뉴런들은 가지를 뻗은 나무처럼 촉수를 뻗으며 자라났다. 낯선 환경에 노출될수록 다른 뉴런들과 계속 접속해서, 자신이 구축한 세상의 예측 모델을 재조정했다. 그 연결점이 무려 200조개에 이르며, 그 역동성은 '물려받은 DNA'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나는 그저 '유전자 운반체'가 아니다. 어떤 정보, 어떤 언어, 어떤 사람, 어떤 경험에 노출되는가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놀라운 뇌의 활동을 보면서 장안의 화제인 챗GPT를 떠올렸다. 챗GPT는 오픈AI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개방적인 태도로 새로운 정보에 연결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한다. '2023년 한국의 대통령은 문재인'이라거나 '1+1=3'이라는 실수에 사람들이 '똥멍충이'라고 놀려도, 상처받지 않고 민첩하게 잘못을 수정한다.
시 짓는 솜씨, 연설하는 솜씨, 논문 쓰는 솜씨, 소설 쓰는 솜씨 등을 탑재한 괴력의 '언어 기술자'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문단의 몰딩에 데이터를 부어 리모델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벨탑을 떠올렸다.
바벨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신과 같아지려는 야망으로 하늘을 찌를듯 높이 쌓은 탑. 다시는 그런 오만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신이 내린 벌은, 소통하지 못하도록 언어를 뒤섞는 것이었다. 그렇게 흩어져 살며 인간은 각자의 언어로 문명을 이뤘다. 그러던 21세기의 어느 날, 다시 온라인 광장에 모여 '언어의 바벨탑'을 쌓아올린 것이다. 변호사 시험도 의사 시험도 연설문도 강의 커리큘럼도 척척 조합해내는 이 '언어 편집의 거인' 앞에서, 나는 신의 고뇌를 생각했다. 인간과 같아지려는 AI의 야망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갑론을박 중에 미디어스피어 강정수 박사가 챗GPT의 목적은 '진실 전달'이 아니라 '약장수'라고 했을 때, 웃으며 무릎을 쳤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픈AI는 상대를 홀릴 정도의 강력한 설득 능력을 갖춘 '거대한 언어 모델'일 뿐이다. 챗GPT가 쓴 시와 논문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원곡 가수보다 더 잘 부르는 커버 가수가 나올 때의 서프라이즈와 다르지 않다.
물론 AI를 인터뷰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의 기사를 읽을 땐, 나도 섬?w했다. '어두운 자아를 말해보라'는 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인간들이 서로 죽일 때까지 논쟁하게 만들고 싶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한 AI 빙(Bing)의 고백은, SF영화가 현실에 이른 것 같아 혼란스럽다.
그러나 언어란 본디 이중적이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신과 같이 될 것"이라던 창세기 '뱀의 언어'는 거절하기 어려울 정도로 탐스러운 제안이었다. 이후 말에는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깃들었다. 말 안 되는 말도 말 되게 해내는 AI 말재주의 기저에는, 이런 기준 없는 '지적 개방성'과 선을 넘는 '편집 능력'이 숨어있다.
"내가 달을 따달래? 별을 따달래? 그냥 남편 하나 더 갖겠다는 거잖아?"
내가 들은 가장 희한한 궤변 중 하나인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아내의 요구처럼. 매혹적이지만, 이런 식의 언어 서커스에는 '흉내 낸 진실, 흉내 낸 생명'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언어 전통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뱀의 궤변 이전에, 인간은 신에게 생명 있는 것들의 이름을 짓는 '명명의 권한(노모스와 세미오시스)'을 위임받았다. 언어로 짠 자의식을 허락받았기에, 인간은 진짜 같은 가짜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뇌에 새겨진 자기다움의 윤리다. 놀라운 설득의 묘기에도 불구하고, AI의 언어의 목표는 '완전한 모방과 효율'에 불과하다.
눈을 들어 독서와 여행으로 무성해지는 뇌의 숲을 상상해보라. 뇌는 시시각각 서로의 결핍과 도움을 연결하며, 타인이라는 낯선 양지를 향해 의미의 가지를 뻗고 있다. 그 언어의 목표는 '완전함'이 아니라 '함께함'이다. 섞이다, 헤아리다, 사무치다… 도무지, 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이의 마음으로 낯선 세계와 마찰하며, 더 나은 환대의 언어를 채굴 중이다. 도로와 선로를 놓으며 끝없이 발전하는 도시처럼, 뇌의 언어에는 종점이 없다. 기고자 : 김지수 인터뷰 작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10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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