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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성격 강한 노조들 상당수, 정부의 요구 사실상 거부
민노총 산별노조 87%, 한노총 85%가 제대로 제출안해
尹대통령 ＂국민 혈세 수천억 사용… 단호한 조치할 것＂

정부의 회계 관련 서류 제출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노조에 공공 성격이 강한 지자체 공무원 노조와 각급 교사 노조, 공기업 노조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대형 산별 노조 87%, 한국노총은 본부에 직접 가입된 대표 가맹 조직 85%가 자료 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부의 노조 회계 투명화 요구를 조직적으로 거부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0일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회계 자료 제출 노조 명단을 분석한 결과, 회계 자료를 아예 제출하지 않거나 표지만 제출하는 등 '부실 제출'한 207곳 중 공무원 노조가 29곳, 교사(교수) 노조가 13곳, 공기업 노조가 4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는 경북교육청공무원노조, 영주시청공무원노조, 부산공무원노조, 전국초등교사노조, 전북공무원노조, 한국공항공사노조 등이 들어있었다. 노총별 제출 거부·부실 제출(일부 서류만 제출) 비율은 민노총이 75%, 한노총 61%, 무소속 노조 58% 순이었다.

민주노총은 본부 산하 대형 산별 노조 15곳 중 13곳(87%)이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전공노(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수노동조합 등이다. 한국 비정규교수노조와 전국대학노조 2곳만 제대로 회계 자료를 냈다. 한국노총은 본부에 직접 가입된 대표 가맹 조직 27곳 중 23곳(85%)이 정부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전국화학노조연맹, 전국택시노조연맹, 전국건설산업노조 등이다. 한국노총 내 최대 산별 노련 중 하나인 금속노련, 전국 은행(시중·지방·국책) 행원들이 조합원인 전국금융산업노조와 전국출판노련도 자료 제출을 아예 거부했다.

고용부는 이번에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은 노조에 대해 다음 달 2일까지 자료 보완을 요구하고, 따르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부과한 뒤 현장 조사까지 벌일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에서 "국민의 혈세인 수천억원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 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노조의)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는 '회계 자료 등을 제출하라'는 정부 요구에 어느 노조가 응했고, 어느 노조가 응하지 않았는지 구체적인 명단이 나와 있다.

앞서 정부는 노조 회계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난 1일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27곳에 '15일까지 노조 관련 서류를 제대로 갖췄는지 증빙하라'며, 구체적으로 '관련 서류 표지 1장과 속지 1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고하라'고 했다. 현행법상 노조는 사무실에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 주소록, 회의록을 비롯해 예산서와 결산서, 총수입·지출 원장, 수입·지출 결의서, 지출 증빙서 등을 갖춰놔야 한다.

하지만 327개 자료 제출 대상 노조 중 207개가 자료를 내지 않거나 부실 제출했다. 한노총과 민노총 지도부도 "노조에 대한 공격"이라며 정부 요구를 거부하라는 투쟁 지침을 내린 바 있다. 표지만 내고, 속지는 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대부분 노조는 이 지침을 따랐다.

공무원 노조는 물론, 정부 유관 기관인 공기업 노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노총에선 국가철도공단노조, 그랜드코리아레저노조, 부산교통공사노조 등 공공기관 노조들이 서류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 한노총에선 LH한국토지주택공사노조, 근로복지공단노조, 한전KPS노조 등도 정부 요구에 따르지 않고 일부만 냈다.

이번 노조 회계 투명성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산하기관 노조인 '노동부유관기관노조' 역시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 이 노조에는 노사발전재단, 건설근로자공제회, 한국고용정보원 등 10개 고용부 관련 기관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유관기관노조도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았다. 국립생태원, 한국기상산업기술원 등이 소속되어 있다. 민노총 소속인 전국언론노조는 서류 일부를 안 냈고, 상급 단체가 없는 한국은행노조는 자료를 아예 안 냈다.

한 회사에서 노조별로 제출 여부가 갈리는 경우가 있었다. LG전자에서는 한국노총 소속인 LG전자노조는 자료 제출을 아예 안 했지만, MZ(밀레니얼Z)노조로 통하는 LG전자사람중심사무직노조는 정부 요구대로 자료를 냈다.

양대 노총 소속 노조들은 상급 단체가 없는 노조들보다 정부 자료 제출 요구에 더 비협조적이었다. 상급 단체가 없는 '무소속 노조'의 경우 전체 84곳 중 35곳(42%)이 정부 요구에 따라 자료를 제출한 반면 민노총은 소속 노조 65곳 중 16곳(25%)만 자료를 제대로 냈다. 한국노총은 이 비율이 39%(173곳 중 67곳)였다. 민노총 소속 노조들은 일단 서류를 낸 비율이 91%로 높긴 했다. 그러나 표지만 제출하는 등 정부 요구를 따르지 않은 곳이 66%나 됐다. 한국노총은 44%, 상급 단체 없는 노조는 이 비율이 37%였다.

이번 명단을 분석해보면 일부 노조들에서 '정부 요구를 따르지 말라'는 양대 노총 본부 지침에 따르지 않는 이탈 현상도 발견됐다. 민노총에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조와 교보생명노조, 국민건강보험노조, 더불어사는희망연대, 서울교통공사노조,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서울시설공단노조, 전국대학노조, 전국예술강사노조 등이 서류를 제대로 제출했다. 전체 중 16곳(25%)이다. 민노총의 전통적인 강성 노조로 꼽히면서 지난해 말 화물연대와 함께 파업까지 벌였던 철도노조 역시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다. 한국노총에선 SK브로드밴드노조, 샤니노조, 연세의료원노조, 서울시공무원노조, LG디스플레이노조, 전국이마트노조, 포스코노조, 하이트맥주노조 등이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다.

노동계에선 양대 노총 본부가 '정부에 협조하지 말라'는 지침은 내렸지만, 실제 개별 노조들이 이 지침을 따랐는지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노동계 관계자는 "본부에서 내지 말라고는 하지만, 개별 노조가 서류를 낸 뒤 안 냈다고 해도 본부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본부 지침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은 "노조의 '깜깜이 회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노동조합이 사회적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 노조별 회계장부 제출 현황

[그래픽] 회계장부 제출 안 하거나 제대로 제출 안 한 주요 노조 기고자 : 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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