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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관통한 '늙은 장총'의 노래… 1막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물간 드라마 작가 나나가 소품 창고에서 낡은 장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이름은 '빵야'. 1945년 2월 인천 조병창에서 태어났다는 99식 소총이다. 나나는 빵야의 파란만장한 삶을 시대극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일본 관동군 장교의 손에 들어갔다가 광복 후 여러 주인을 거치게 된 빵야가 1947년 제주 국방경비대 이등병, 6·25 전쟁의 국군 학도병과 인민군 의용대, 빨치산 토벌대와 빨치산 소녀 등을 체험한 이야기가 극중극으로 흘러나온다. 고단한 장총의 여정은 그 자체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다.

'빵야'(김은성 작·김태형 연출)는 좌우의 어떤 이념으로 기울거나 신파로 흐를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연극은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 세련된 연출로 그 지뢰밭을 피해 간다. 당대에 군인이 될 수밖에 없었거나 가해를 막으려고 총을 들었던 인물들, 가족을 잃고 복수심에 총을 쏘는 등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희생자가 됐다는 점은 매한가지다.

의인화된 장총은 백두산 졸참나무로 만들어졌다. 그에겐 꿈이 있었다. 쾅 소리를 내는 총이 아니라 감동을 주는 악기가 되고 싶었다고 빵야는 고백한다. 알고 보니 방아쇠도 관악기 호른에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던 밸브를 가져다 붙인 것이었다. 극작가 말마따나 빵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비극적 몸체"다. 이 울퉁불퉁한 땅에서 78년을 살아온 그의 고해성사이자 노래, 때로는 통곡처럼 다가온다.

연극은 빵야를 소재로 한 나나의 집필 과정과 빵야를 소유한 이들의 이야기 사이를 시계추처럼 왕복한다. 배우들의 동선과 소품, 조명 등을 뮤지컬처럼 빠르고 화려하게 풀어내면서도 밀도가 단단하다. 최근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 김세환의 연기는 빵야(하성광·문태유)와 나나(이진희·정운선) 못지않게 빛난다. 특히 술 취한 제작자 연기는 압권이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대사 "교회 가서 소주나 한잔할까?"와 함께 아픈 이야기에 쉼표와 웃음을 찍어준다.

연극 '빵야'는 상연 시간이 170분으로 길다는 게 흠이다. 이 장르에 익숙하지 않다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에겐 따분해질 틈이 없다.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에 박수가 나올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1인 다역을 맡아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들의 앙상블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다. 극작부터 무대, 연기와 연출까지 모든 의미에서 부족함이 없다. 아직 2월이지만 올해의 연극 후보로 당당히 밀고 싶은 수작이다. 공연은 26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기고자 : 박돈규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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