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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기업형 대포통장 조직 적발… 38명 검거, 6명 구속

노숙인들을 이른바 명의만 빌린 '바지사장'으로 앉혀 실체가 없는 유령 법인을 만들고, 이 법인 명의로 발급받은 대포통장 1048개를 불법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포통장 제조·유통이 사실상 기업화한 것으로, 이들이 만든 대포통장을 거쳐간 각종 범죄 자금은 약 3년간 총 13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2019년부터 작년 7월까지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국내 최대 규모의 대포통장 개설·대여 조직 소속 38명을 검거하고, 이 중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범죄단체조직, 업무방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다. 주도자인 총책 A씨와 총괄지휘책 B씨 등 30대 2명은 대구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조직폭력배 '동성로파'와 '향촌동파'에서 과거 활동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6월 과거 교도소 동기였던 노숙인을 대포통장 범죄에 가담시켰다. 대포통장이 각종 범죄에 활용되면서 최근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는 통장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데, 거주지가 명확하지 않은 노숙인은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쉽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노숙인 명의를 빌려 법인을 하나 세운 뒤, 이 법인을 '본점'으로 삼고 그 아래 여러 개 '지점'까지 두게 한 후 법인 명의 통장을 줄줄이 만들었다. 노숙인뿐만 아니라, 일용직 근로자, 아르바이트생, 무직인 사람 등 40여 명의 명의도 동원했는데, 이렇게 만든 유령 법인이 528개나 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사람 명의로 최대 60개의 계좌가 개설된 경우도 있었다.

특히 명의를 빌려준 노숙인들의 경우 허름한 원룸을 빌려 살게 하면서 별도 관리도 했고, 생활비로 매주 20만원을 주기도 했다. 반면 자기들이 만든 대포통장은 월 170만원의 이용료를 받고 범죄 조직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벌어들인 돈만 212억원에 달한다.

관리하는 대포 통장이 1000개가 넘을 정도로 사업이 커지면서 이 조직은 더욱 기업처럼 모습을 갖춰갔다. A씨는 또 다른 지역 조폭 출신 등을 영입해 총괄지휘 담당, 법인 설립 담당, 통장 개설 담당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기도 했다. 특히 대포통장을 관리하는 이른바 '열쇠쟁이'를 별도로 두고 각종 대포통장의 비밀번호나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관리를 맡기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가명을 사용하며 실시간으로 활동 내역을 공유했다. "본인 명의 휴대폰 사용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휴대전화 교체해라" "주거지에 들어갈 때 주변 잘 살피고, 블랙박스 수시로 열어보며 미행 흔적 살펴보라" 등 경찰 수사에 대비한 일종의 행동 수칙을 공유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조직의 존재를 포착한 뒤 5개월간 수사를 벌여 이 일당을 붙잡았다. 이들의 본거지를 급습했을 때 현장에서 현금 1억원을 압수했고, 대포통장 566개 계좌에 대해 지급 정지를 요청해 통장에 들어있던 46억원 등 총 47억원에 대해선 피의자가 범죄를 통해 취득한 불법 수익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소 전 몰수보전 조치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조폭들은 과거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고, 이합집산하며 이권 목적으로 움직이고 활동한다"며 "대포통장 개설·유통도 일종의 활로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 기업형 대포통장 조직 어떻게 운영됐나 기고자 : 김수경 기자 김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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