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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난 뒤 설거지를 바로 할 때가 있고 그러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설거지 거리가 많을 때는 식탁에서 싱크대까지 거리가 42.195㎞는 되는 것 같다. 보통은 에잇 하고 후다닥 해버리지만 어떤 때는 소파에 벌러덩 눕거나 딱히 볼 것도 없는 TV를 켜기도 한다. 어떤 날은 그렇게 앉아서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 설거지를 할 때도 있다.

설거지는 매일 하기로 마음먹은 운동과 비슷하다. 운동하러 나갈 때까지 온갖 핑계를 떠올리며 운동하지 않을 궁리를 한다. 한동안 달리기에 중독돼 하루라도 조깅을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찌뿌둥해서 견디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도 운동하러 나가기는 매번 싫었다. 그러나 일단 나가면 달릴 수밖에 없고 달리고 나면 그 쾌감은 늘 새롭고 즐거웠다. 산에 오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산에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갖춰 입고 신발 신고 오르기 시작하면 후회가 밀려온다. 산에 도대체 왜 올라가려는 거지? 오늘 내로 올라갈 수는 있을까?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올라갔던 거지? 그러나 정상 표지석을 마주치는 순간 그 모든 후회와 고통은 사라진다. 등산의 마법이자 모든 운동의 매력이다.

설거지도 등산과 똑같다. 저 산더미를 언제 다 닦나 싶은데 일단 시작하면 언젠가는 끝난다. 음식 쓰레기를 모으고 기름과 양념으로 범벅된 그릇들을 하나씩 닦아나간다. 배수구가 막히거나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배수관에 기름때가 들러붙기 때문이다. 마치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끼어 피가 잘 통하지 않고 혈압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식용유든 고기 기름이든 참기름이든 최대한 종이 수건으로 닦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설거지한다.

자주 할수록 노하우가 쌓이는 것은 설거지도 예외가 아니다. 와인잔처럼 조심스레 씻어야 하는 것들 말고는 대개 닦고 헹구는 방법이 손에 익어 있다. 밥그릇이나 반찬 그릇, 자주 쓰는 접시 같은 것들을 닦을 때는 두 손이 로봇 팔처럼 움직인다. 설거지하면서 보려고 태블릿으로 뭘 틀어놓을 때가 있는데,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태블릿 혼자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상 무아지경이 되는 셈이다. 그럴 때 설거지는 일종의 명상이 된다.

무엇보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전기레인지와 조리대, 싱크대까지 깨끗하게 닦았을 때의 그 청량한 기분은 청소나 빨래했을 때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그래서 밥한 사람이 설거지도 하겠지 하고 슬그머니 달아나려다가 붙잡혀도, 구시렁대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것이다. 기고자 : 한현우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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