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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가 아니었다. 해리 스타일스가 제65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나는 해리 스타일스를 좋아한다. 두 번째 앨범 '해리스 하우스'는 그래미를 받을 만하다. 빌보드에서 15주 1위를 한 수록곡 'As It Was'는 한국 스트리밍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해외 팝이 한국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즘 이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좋은 노래의 힘이다.

그래도 조금 아쉬웠다. 후보에 오른 비욘세의 일곱 번째 앨범 '르네상스'는 압도적 걸작이다. 다만 그래미도 최선을 다했다. 비욘세에게 '올해의 댄스 음반상' 등 네 부문을 수여했다. 이로써 비욘세는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를 제치고 역사상 그래미를 가장 많이 수상한 가수가 됐다. 어쨌거나 역사를 쓴 것이다.

문제는 해리 스타일스가 수상 소감을 말하자 벌어졌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이런 일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가 불타 올랐다. 사람들은 "그런 일은 항상 당신 같은 백인 남성에게 일어난다"고 포화를 쏟았다. 한 미국 언론인은 "지금까지 들은 수상 소감 중 가장 백인 특권적인 말"이라고 쏘아붙였다.

그건 정말 백인 특권적인 말이었나? 나는 해리 스타일스의 경력을 오랫동안 따라왔다. 그는 영국판 '수퍼스타K'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팩터' 출신이다. 심지어 그는 초반에 탈락했다가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심사위원들이 다른 남성 참가자들과 그룹으로 묶어 다시 도전하도록 한 것이다. 이듬해 그들은 '원디렉션'이라는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다. 원디렉션은 BTS 이전에 세계를 휩쓴 최후의 백인 아이돌 그룹이었다.

원디렉션이 해체하자 모든 멤버가 솔로 데뷔했다. 장렬하게 잊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해리 스타일스다. 첫 앨범이 나오자 근엄한 평론가들조차 박수를 보냈다. 아이돌 출신이 홀로 성공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엔싱크' 출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그 드문 성공 사례 중 하나다. 저스틴조차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은 수상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여전히 아이돌 출신에 대한 편견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면 더욱 큰 편견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유리 천장에도 순위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인종과 성별과 출신 배경에 점수를 매기며 누구의 유리 천장이 더 높고 두꺼운지를 논한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유리 천장이 있다. 각자의 유리 천장을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 각각의 섬세한 맥락을 읽어내는 노력 없이 누군가의 업적을 특권으로 '퉁치는' 것이 정말 정치적으로 공정한 일일까.

오히려 나는 해리 스타일스의 수상 소감에 적잖게 감동했다. 그가 깨부순 유리 천장은 그래미에서 과소평가받아온 다른 아이돌 출신들의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훗날 BTS나 뉴진스 멤버들이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는다면? 지긋이 나이 든 해리 스타일스는 객석에서 손뼉을 치며 기쁜 표정으로 노래할지도 모르겠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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