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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상가, 유령 건물로 방치

경기 고양시의 번화가 중 하나인 일산동구 마두역 8번 출구 앞에 높이 선 지하 3층~지상 7층 규모 건물 '그랜드프라자'는 1년째 출입 금지라고 적힌 노란색 안전띠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 15일 이곳 정문에는 '구조안전 위험시설물'이라고 적힌 2m 높이의 철제 알림판도 보였다.

이 건물에선 지난 2021년 12월 31일 오전 11시 반쯤 지하 3층 주차장에 있는 기둥 하나가 골조가 보일 정도로 파손돼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상인과 인근 주민 등 300여 명이 급히 대피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뒤로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이 건물은 텅 빈 채 먼지만 쌓여 도심 속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당시 고양시가 건물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상가를 임차해 쓰던 상인들은 졸지에 거리로 나앉게 됐다. 각 상가를 소유한 건물주들도 수입이 끊기는 등 피해가 컸다. 하지만 그 후 이들은 손해배상을 받기는커녕 서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처지가 됐다.

16일 고양시 등에 따르면 작년 2월 고양시와 한국건설안전협회는 이 건물은 당장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 또는 재건축을 해야 하는 상태라고 결론 내렸다. 이 건물을 지은 시공사가 지반을 다질 때 콘크리트 말뚝을 박는 대신 진흙과 모래를 층층이 쌓았고, 그 바람에 건물 바닥과 벽에 지하수가 스며들어 건물이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건물을 지은 시점은 1995년인데, 이 회사는 1998년에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지난 1년간 이 건물에 세 들었던 상인 72명과 상가를 매입한 소유주 113명은 시공사에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는 처지가 됐다. 우선 임차인인 상인들은 원래 맡겨놨던 보증금만 받고 떠날 수 없다며 상가 소유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잇따라 냈다.

당시 이 건물에서 분식집을 운영했던 이모(37)씨는 자기 가게가 있던 상가 소유주를 상대로 1억3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상태다. 사고 이후 3개월 뒤 1억2000만원을 대출받아 인근에 새로 가게를 열었다는 그는 매달 매출의 80%를 이자 갚는 데 쓰고 있다고 한다. 그는 "20대 때부터 모은 돈에 빚까지 내서 당시 가게를 마련했는데 보증금 3000만원만 받고 나갈 수 없다"며 "건물에 생긴 문제인 만큼 상가 소유주가 책임을 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가 소유주들은 반대로 "우리도 피해자"라며 상인들을 상대로 건물 안에 있는 짐을 다 빼고 명의를 넘기라며 명도소송을 냈다. 상인들이 짐을 다 빼야 철거든 재건축이든 건물 복구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양시 관계자는 "상인들과 분쟁 중인 상황에서 여전히 건물 안에 있는 상인들 물건을 상가 소유자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고, 상인들은 반대로 순순히 나가면 나중에 손해배상을 못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법무법인 해송 김병희 변호사는 "임대인의 책임이 뚜렷하다고 보기도 어렵고, 시공사 잘못으로 사고가 난 거라 시공사 대표 개인에게 민사소송이 가능한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건물 앞을 지나가던 주민 김모(52)씨는 "건물이 무너진다고 난리가 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라, 이 부근을 지날 때마다 불안하다"고 했다. 기고자 : 김광진 기자 양승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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