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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시험 붙은 나를 국제회의에 실무 책임자로 보내는 것이 말이 되나?" 행정고시(5급 공채)에 붙자마자 국제회의 참석을 지시받은 사무관의 토로다. 조금 성격이 다른 하소연도 있다. "죽어라 일하면 서기관 되는데 13년이 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면 서기관 되는 데 15년 걸린다. 열심히 일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동기들의 하소연이다. 7급이나 9급 공채 시험에 합격한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한다고 5급 출신보다 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라고, '일할 동기가 없다'는 또 다른 성격의 고충을 전해 오기도 한다.

모두 현행 공무원 인사 관리에 문제가 있어서다. 한국의 공무원은 한 번의 시험으로 직급이 결정되고 능력보다 '시험 합격 기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승진한다. 9급 공무원으로 일하면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만을 받아야 할 정도로 공무원의 급여도 낮다. 연금 수령도 이제 불확실하다. 성장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과 낮은 소득에 따른 실망 등이 맞물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기보다 국민 요구에 "알빠임?"('내가 알 바가 아니다'라는 뜻의 MZ세대 속어)이라고 답하려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공무원 관리 제도가 20세기 중반 이후 바뀌지 않아서 비롯된 문제다. 5급, 7급, 9급으로 나뉜 채용 제도만 보더라도 그렇다. 낮은 직급으로 시험에 합격하면 채용 시점부터 성장 가능성이 제한된다. 7급이나 9급으로 합격하면 합격할 때부터 5급 출신과 구분 지음을 당하게 되고, 승진 한계가 어디인지를 듣는다. 거꾸로 높은 직급, 5급으로 합격하면 그 즉시 중앙 부처의 과장 보좌(계장)라는, 'Deputy Director'라는 직위를 명함에 새긴다. 행정고시에 상응하는 '국가공무원 종합직' 제도를 두고 있는 일본도, 과장 보좌가 되려면 시험 합격 후 하위 직급에서 다양한 직무를 먼저 경험해야만 한다. 어느 누구도 처음 하는 일을 잘할 수는 없음에도 우리나라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처음부터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을 거라 가정한다. 업무 수행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직급으로 시험에 붙는다 하더라도, 승진은 합격 기수에 따른 '시간'이 결정하니 그 후 능력 발휘에는 제한이 있다. 특출한 인재가 있어도 해외처럼 30, 40대에 장차관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사 관리 방식을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 민간 기업 등을 보면 해답은 이미 존재한다. '경력 경로' 중심의 관리가 그러하다. '필수 인재' '핵심 인재' '주요 인재' 식으로 인재를 구분하고 경력 경로를 차별화하는 방식 말이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행정고시에 합격한 경우 '핵심 인재'의 지위를 부여하고, 9급부터 공직을 시작하도록 하되 이들은 일반 공무원과 달리 입직 4~5년 후에 5급까지 승진하도록 하는 등 경력 경로를 차별화해 공무원을 관리하게 된다. 이 경우 행정고시 출신이 아닌 공무원이더라도 뛰어난 성과를 보이면 '핵심 인재'로 재분류할 수 있다.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행정고시 출신 중에서도 능력이 부족할 경우 '주요 인재'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고, 일을 특별히 더 잘하는 경우 '필수 인재'로 지정하여 더 빠르게 승진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일하는 내내 경쟁하고 그에 따라 차별적 보상을 받도록 하는 것이 공직 변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에 더해서 가장 빠르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지금의 보수 제도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보수는 하루 빨리 정상화되어야 한다. 공직 사회가 완전히 붕괴하여 민간에서 일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기고자 : 신재민 前 기획재정부 사무관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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