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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목소리를 간직한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

'남성 소프라노(Male Soprano)'.

흡사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형용 모순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이름 앞에 당당하게 이런 수식어를 붙이는 성악가가 있다. 오는 16~19일 첫 내한 무대를 갖는 베네수엘라 출신 성악가 사무엘 마리뇨(30)다. 흔히 '팔세토'라 불리는 가성(假聲) 창법으로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음역을 소화하는 남자 성악가들을 '카운터테너'라고 한다. 하지만 마리뇨는 사춘기 시절 변성기를 겪지 않아서 그보다 살짝 더 높은 소프라노 음역이다. 일상 생활에서 다른 카운터테너들은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도 그는 소년처럼 살짝 갈라진 가늘고 얇은 고음으로 말한다.

그러다 보니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인기 뮤지컬이나 오페라에서도 남성 역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 역을 즐겨 맡는다. 최근 세계 명문 음반사 데카(Decca)를 통해서 솔로 음반을 발표했고, "사무엘 마리뇨는 오페라의 희귀한 사례인 진정한 남성 소프라노"(뉴욕타임스)라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씨는 "마리뇨는 카운터테너보다는 남성 소프라노에 가까운 음역"이라며 "해외에서도 최근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추세"라고 말했다.

성악가가 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타고 난 것 같지만, 그는 최근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유년기의 가슴 아픈 사연도 털어놓았다. "주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바람에 무척 끔찍하고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성대 수술을 고심하던 끝에 병원을 찾았지만, 거꾸로 의사에게 성악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어릴 적 고통 덕분에 지금은 더욱 강해진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7년간 발레를 공부했던 그는 성악가가 되기 위해 파리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마리뇨는 "프랑스에서 공부할 적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리 근교 디즈니랜드 아르바이트부터 베이비시터와 호텔 안내 데스크 근무까지 안 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마르세유 오페라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바로크와 모차르트 작품들로 명성이 높은 소프라노 바버라 보니(66)의 눈에 띄어서 다양한 곡들을 공부했다.

덕분에 그가 부르는 곡들도 여성 소프라노의 아리아부터 과거 신체적 거세를 통해서 고음을 유지했던 카스트라토의 노래까지 다양해졌다. 그는 "무대에서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18세기에는 여성들이 남성 배역을 맡고, 거꾸로 남성들이 여성 역을 부르는 등 성(性) 역할이 훨씬 유동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로크 시대 카스트라토들은 오늘날 팝 스타 같은 인기를 누려서 한 해 3000명의 아이들이 거세 수술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대략 20세기 초반에는 자취를 감췄고, 그 뒤에는 가성으로 음역을 끌어올리는 카운터테너의 시대가 됐다.

최근 마리뇨는 바로크 음악 전문 연주 단체를 직접 창단하고 고음악 발굴에도 나서고 있다. 앞으로 도니체티 같은 이탈리아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오페라 여성 주인공 역에도 본격적으로 도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16일 군포문화예술회관과 17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영국 카운터테너 휴 커팅, 한국 카운터테너 정시만씨와 함께 무대에 선다.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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