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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가 보던 공포영화는 귀신이나 살인마가 나타나거나, 돌연변이가 산 사람을 해치는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사건은 주로 밤에 일어나며, 외딴 장소에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위험이 닥치고, 살려고 버둥댈수록 빨리 죽는다. 방심은 금물이다. 안심하는 순간 변을 당하기 때문이다.

법칙을 알면서도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적당한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른바 클리셰(문학·영화에서 정형화된 상투적 표현 방식)는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확보해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건 이야기일 뿐'이라고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진짜 무서워하는 건 법칙이 무의미한 영화다. 한밤 외딴곳을 배경으로 두지 않고, 귀신도 나오지 않는 영화. 영화 '새'(The Bird, 1963)에서는 무해해 보이던 새 떼들이 마을을 덮친다. 한편, 영화 '미드소마'(Midsommar, 2019)에서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대낮에 광기의 살육 축제가 열린다.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찝찝한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영화와 현실 사이의 안전거리가 무너진 탓이다. 귀신이야 없다고 믿으면 그만이지만, 새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가까운 존재의 위협을 다룬 영화는 현실에서 해석할 여지를 남긴다. 영화가 하나의 은유로 여겨지는 탓이다.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의 몫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이 투영되면, 공포의 은유는 더 다양하고 폭넓게 해석된다. 이를테면 영화 '새'를 보고 누군가는 허락 없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이방인을 떠올리고, 다른 누군가는 오만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공격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공포 영화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공포 영화는 단지 한여름, 쾌감과 서늘함을 선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맞닥뜨릴 위협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법칙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이겨내야 할 공포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을지 말이다. 기고자 : 전지영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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