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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엔 부모 잃은 아이들 가득… 이중 상당수는 이름도 몰라

튀르키예 남부 최대 병원인 아다나시(市) 연구·임상훈련 병원(Adana City Training and Research Hospital). 13일 오전(현지 시각) 이 병원 2층 수술 센터에서는 10여 건의 크고 작은 수술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수술 환자 대부분이 지난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의 피해자들이다.

수술실 입구 앞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20여 명이 수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한 남성은 "지난주 수요일 구조된 아내가 복합 골절로 인해 재수술을 받고 있다"며 "수술 환자 대부분이 (건물 잔해에 깔려) 복합 골절을 당했거나 머리를 많이 다친 사람들"이라고 했다.

피해가 가장 큰 남부 하타이주(州) 지역의 병원들이 대부분 문을 닫으면서, 이 지역에서 구조된 중상자들은 대부분 이 병원으로 이송돼 왔다. 가지안테프와 안타키아 등 약 2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앰뷸런스로 3시간 걸려 이송된 사람들도 많다. 이 병원엔 외상 센터 병동의 중환자 150여 명을 포함, 현재 800여 명이 긴급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 1층 응급실 앞에는 50여 개에 달하는 환자 이송용 응급 침대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응급실 앞에서 만난 당직 의사는 "지진 발생 후 3일간 20여 명의 응급의와 정형·신경외과의들이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며 "타과 전공의들과 임상 실습 중이던 학생들까지 총출동해 환자를 받았지만 역부족"이라고 했다.

7층 외상 센터 앞에서 마주친 한 외과의는 "사태 초기에는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너무 많아 먼저 치료해 구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선택이 이어졌다"고 했다. 의약품과 혈액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국내외에서 구호 물품이 들어와 위기를 넘겼다. 이 병원으로 이송된 이들은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지진 피해 지역 곳곳에서 정전 사태가 계속되면서 현지 병원의 재가동이 지연돼 일부 지역 이재민들은 여전히 구호 단체들의 긴급 처치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비상계단 쪽으로 가 보니 중환자들의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베카리스씨는 "부모님과 아내, 아이 셋을 지진에 잃었다"고 했다. 그는 "머리를 크게 다친 막내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그 아이마저 잃는다면 이 세상에는 나 하나뿐"이라며 멍한 얼굴로 말했다.

옆 건물 어린이 병동은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이 중 상당수가 연고가 없는 아이들이다. 한 간호사는 "철이 어느 정도 든 아이들은 부모님 이름과 주소 등을 이용해 친척들을 찾아 연락을 했지만, 유아나 아기들은 신원 확인조차 힘들다"고 했다. 튀르키예 정부 집계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부모나 가족이 모두 사망해 신원 파악조차 되지 않는 어린이 환자가 300명에 육박한다.

부모를 잃은 어린이 환자들에 대해서는 입양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부모나 가까운 친척의 행방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아기를 입양 보내서는 안 된다"며 "아기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들이 퇴원한 뒤에도 상당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라며 걱정했다. 외상 센터와 어린이 병동을 오가며 일하고 있는 한 수련의는 "어른 환자, 어린이 환자 할 것 없이 말문을 닫은 이가 많다"며 "가끔 가족의 안부를 묻는 이들이 있는데, 더 큰 충격을 받을까 봐 차마 알려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중동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4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튀르키예 재난위기관리청(AFAD)은 이날 지난 6일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현재 3만1974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시리아의 사망자 수 5814명을 합하면 총 3만7788명에 이른다. 이는 1939년 에르진잔 대지진의 사망자 기록(3만1643명)을 넘어선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번 지진이 공식적으로 최근 100년 새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최악의 지진이 됐다"고 밝혔다.

14일 하타이주에서는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26세 여성이 지진 발생 201시간(만 8일 9시간) 만에 구조되는 소식도 전해졌다. 1995년 6월 29일 여름철에 발생한 서울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당시 19세였던 박승현씨가 사고 발생 377시간(만 15일 17시간) 만에 구조됐었다. 기고자 : 아다나(튀르키예)=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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