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강동구 '어린이식당' 실험 1년… 부모들 ＂작지만 진짜 복지＂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에서는 평일 아이들의 저녁 식사 한 끼가 가사(家事)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하지만, 하교하는 2~3시 전후부터 퇴근한 부모가 집에 돌아오는 저녁 시간까지는 사실상 '돌봄 공백'인 경우가 많다. 저녁밥을 따로 챙겨주는 이가 없는 이상 스스로 밥을 차려 먹기 힘든 아이들은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간식에 의존하는 일이 잦다. 집에 홀로 있는 아이들 식사 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허겁지겁 퇴근하는 직장인들도 부지기수다.

서울 강동구가 최근 1년여간 이런 돌봄 사각지대를 메우는 실험을 해 주목받고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한 끼 2500원만 받고 저녁밥을 주는 초등학생 전용 '어린이식당'을 운영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작지만 체감 효과는 최고인 진짜 복지'라며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5시 30분쯤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동어린이식당'. 10살 안팎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5명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식당 안에 있던 영양사 강은주(50)씨에게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우렁차게 인사했다. 바로 식당으로 향한 아이들은 배식대에서 돈육불고기와 양배추쌈, 브로콜리숙회를 식판에 받아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 옆 놀이방에서는 이미 밥을 다 먹은 아이들 20여 명이 탁구나 오목을 즐기며 왁자지껄 놀고 있었다.

14일 강동구에 따르면 강동어린이식당은 6개월에 한 번씩 강동구 소재 초등학교 학생 가운데 맞벌이 또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저녁 식사를 한 끼 2500원에 제공한다. 6개월마다 지원을 받아 30여 명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지자체가 이런 식당을 직접 운영하는 건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식단은 한 끼에 8000원 수준으로 구성되지만, 이 중 5500원을 구에서 지원하는 식이다. 암사동의 한 건물 2층 131㎡(약 40평) 공간에서 작년 1월부터 정식 운영을 하고 있다. 식당 외에도 놀이방, 동화책 서가 등이 있어 식당 문을 닫는 오후 8시까지 아이들이 놀다 가곤 한다. 구청이 영양사, 돌봄선생님, 조리사 등 3명을 두고 이들의 인건비와 식재료 값, 건물 임차료 등 연 1억5000만원의 예산으로 운영 중이다.

식당을 이용하는 아이들 가정에선 "단 한 끼를 주는 것만으로 가족들의 저녁 삶이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우선 육아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식사를 준비하거나 식후에 설거지 등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아끼게 돼, 부모가 충분히 쉬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도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게 됐다.

서울 암사동에 사는 맞벌이 부모 서모(42)씨는 올해 4학년이 되는 외동아들 박서빈(10·가명)군을 어린이식당에 1년 넘게 보낸다. 한 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그는 "저녁 6시에 퇴근해 집에 오면 7시, 밥을 다 차리면 거의 9시인데 아이들도 힘들고 나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제때 식사를 한 아이에게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이 생기니, 숙제 등 학교 생활도 스스로 잘 챙겨서 하게 된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라고 했다.

서울 천호동에 사는 초등학교 교사 이모(46)씨도 올해 4학년이 되는 이하린(10·가명)양과 하민(6·가명)양을 모두 식당에 보낸다. 그는 "퇴근 후엔 너무 피곤해 식사를 준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이 부담이 줄어드니 아이들에게 더 집중해 저녁 시간을 더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아이들도 반갑다. 오수아(12·가명)양은 부모님이 밤 10시까지 일하는 일이 많아, 올해 중학생이 되는 오빠와 함께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식당에 오면서 "다양한 채소를 먹게 되어 좋다"고 했다. 수아양은 "학교 급식에 양배추쌈이 나오면 남겨서 버리곤 했는데 식당에서 고기를 싸 먹어 본 후론 맛을 들이게 됐다"고 했다. 강동구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영양 상담과 비만 예방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에 지원금을 주는 복지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식당처럼 작지만 실질적인 돌봄을 지원해야 육아 부담을 줄이고 저출산도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식사는 아동의 영양 상태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지자체에서 저녁을 책임지면 맞벌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부담이 그만큼 줄게 된다"면서 "멀리 사는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거나 기존 돌봄 시설의 운영 시간을 연장하면 더 많은 가정이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고자 : 조재현 기자
본문자수 : 225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