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3년 방역 끝나자 결혼 수요 급증… 신랑·신부 또 울리는 高물가

올해 10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김모(32)씨는 2~3년 전 결혼한 대학 동기들에게서 당시 그들이 알아본 웨딩홀 가격 리스트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시세를 알아보니 예식장과 스튜디오 사진 촬영, 웨딩드레스 대여, 메이크업을 합친 이른바 '스드메' 가격만 해도 총 400만~500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김씨는 "친구들이 준 웨딩홀 20여 곳 정보를 보고 결혼식 전체 비용을 2000만원 수준으로 잡았는데 이건 어림도 없었고, 예상했던 비용의 2배인 4000만원은 들겠더라"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대부분 해제되는 등 약 3년 만에 코로나 사태를 벗어나 온전한 일상이 대부분 회복되면서, 미뤄왔던 결혼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가파르게 오른 결혼 비용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예식장, 하객 식대, 스드메 등 '결혼 3종 세트'를 중심으로 각종 비용이 치솟은 탓이다. 젊은 부부들 사이에선 "결혼은 고급재, 출산은 사치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본지가 올해 서울시 웨딩홀 90곳의 대관료를 조사한 결과, 이 중 65곳이 최근 1년 새 대관료를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관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식대나 꽃장식과 같이 예식 진행 비용을 올린 곳도 6곳 있었다. 10곳 중 8곳꼴로 가격을 올린 셈이다.

서울 중구의 A웨딩홀은 작년 초 350만원이었던 대관료가 600만원으로 올랐다. 예식장 관계자는 "식재료 비용이 워낙 많이 올라 기존 6만5000원이던 1인당 식대도 인상해야 하는데, 대관료를 그 대신 올린 것"이라며 "대신 다른 곳보다 우리 식대가 싸다"고 했다. 관악구의 한 웨딩홀도 현재 대관료가 988만원으로 1년 새 약 24% 올랐고, 용산구의 한 고급 웨딩홀도 대관료가 164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올랐다. 대부분 웨딩홀에서는 "물가가 올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식재료비는 물론, 직원 인건비, 장식으로 쓰는 꽃값 등이 줄줄이 올랐다는 것이다. 이 시기 예식장을 리모델링해 가격이 달라졌다고 한 곳도 있었다.

올해 4월에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모(31)씨는 "대관료 같은 명시적인 금액 외에도 결혼식 준비 중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비용이더라"며 "축의금 봉투나 방명록 책, 하객들에게 빌려주는 펜까지 대관료와 별도로 돈을 내야 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의 예식장을 예약한 김현미(30)씨는 "꽃장식 등 온갖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걸 다 없애고 최소한으로 해도 예식장을 빌리는 데만 400만원 안팎은 생각해야 하더라"며 "이 비용으로 차라리 남편과 제주도나 해외에 가서 간소하게 결혼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스드메' 가격도 나날이 치솟는 중이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에서 여러 웨딩드레스 대여점을 둘러본 정미현(33)씨는 "길어야 2~3시간 입을 드레스와 남편 예복만 500만원이고, 거기다 옷 입는 것을 도와주는 이모님 인건비, 새벽 메이크업 추가 비용까지 내야 돼 총 600만원은 든다고 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도 2019년 초 서울의 경우 스드메 가격이 총 300만원대였지만 지금은 500만원 안팎은 봐야 한다고 했다.

서울 중구의 한 웨딩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동안 문 닫거나 다른 업계로 빠져나간 사람이 많은 데다 물가까지 올라 인건비가 크게 오른 여파"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예비 부부나 웨딩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고 간다. 온전한 일상 회복 속 결혼 수요가 늘고 있어 비용 역시 계속 오를 것이란 뜻이다.

아찔한 결혼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예비 부부들은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예식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예컨대 서울시의 경우 직접 혹은 위탁 형태로 남산골 한옥마을과 용산가족공원, 월드컵공원, 양재시민의숲 예식장 등을 운영한다. 대관료가 무료이거나 4만원대다. 하지만 이런 곳들은 서울시가 진행하는 예비부부교육 수료증을 지참해야 하고, 자원봉사 실적이 높은 순으로 지원을 받고 있어 요건이 까다롭다. 양재시민의숲 예식장의 경우 작년 10월 올해 결혼할 예비 부부 44쌍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는데 총 101쌍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도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결혼 비용 급등 현상이 젊은 세대의 결혼 기피를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길게 보면 출산율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정부·지자체가 경제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가능하도록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웨딩 업체의 가격 담합 여부를 확인하면서 소비자가 가격을 비교·검증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 가격 치솟는 서울 주요 웨딩홀 기고자 : 신지인 기자 권신혁 인턴기자(연세대 창의기술경영학 4년) 이하린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영학 4년)
본문자수 : 231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