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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내전으로 건물상태 열악

"국경 너머엔 절망뿐이다. 아이들이 건물에 파묻힌 부모를 찾겠다며 잔해를 뒤적이고 있다. 수백, 수천 명이 매몰됐지만 10명 중 1명이나 구했을까 모르겠다."

12일(현지 시각) 튀르키예와 시리아 접경 지역인 하타이주(州) 동부의 질베괴주 국경 검문소. 이날 오전 시리아를 탈출한 라브한(40)씨는 "지진으로 전기가 끊기고, 먹을 것과 식수가 부족해 이러다 다 죽겠다 싶어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약 20㎞ 떨어진 탈 알카마라에서 어머니와 아내,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라브한씨는 "주변 공터마다 시신이 쌓여가고 부상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고 있지만, 이곳을 통제하는 반군은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생존자도 구호 단체 봉사자들도 모두 지쳤다"며 울먹였다.

지난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은 진앙지인 카라만마라슈보다 남쪽으로 약 120㎞ 떨어진 튀르키예 하타이주와 시리아 북부에 더 큰 피해를 줬다. 특히 시리아 북부의 건물은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렸다. 오랜 내전을 겪으며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군을 피해 몰려든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불법 증축으로 구조가 약해진 탓이다. 이런 가운데 규모 7.0이 넘는 여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미 지질조사국(USGS) 경고가 나오면서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 지역 구호 단체는 지금까지 사망자를 4500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정부 통제 지역 4800명, 반군 지역 4500명 등 최소 9300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엔은 "이번 지진으로 약 530만명이 집을 잃고 노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콜레라 등 각종 전염병이 확산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1년부터 내전 상태를 이어가는 시리아의 국제적 고립 상황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반군이 장악한 북부는 정부 행정력은 물론 국제사회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고립무원 처지가 됐다. 100국 이상이 구호의 손길을 뻗친 튀르키예와는 천지차이다. 이날 시리아에서 건너온 또 다른 40대 남성은 "구호물자가 (지진 발생 6일째인) 어제부터 일부 들어왔다"며 "그전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현재 시리아로 전해지는 구호품은 튀르키예에서 보내는 것이 전부다. 질베괴주에서 약 25㎞ 떨어진 제이딘달러 검문소에는 구호품을 싣고 통관을 기다리는 대형 트럭 50여 대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시리아에 구호품을 전달하고 빈 트럭을 타고 온 적신월사 직원은 "서방 구호품들은 대(對)시리아 제재 때문에 바로 들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이스탄불 폭탄 테러 사건의 배후로 쿠르드족 무장 세력을 지목하고 공세를 강화해 온 튀르키예군이 13일 시리아 북부에 거점을 둔 쿠르드계 민병대를 드론으로 공습,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다고 현지 인권관측소가 전했다.

[그래픽] 튀르키예·시리아 국경 검문소 위치도 기고자 : 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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