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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로 위기 돌파하는 영세 봉제업체들… ＂자동화 없이 생존 없다＂

지난 6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인근 한 건물 4층 공장. 330㎡(약 100평) 공간은 빽빽하게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의상 원단으로 가득했다. 앞치마를 두른 숙련공 20여 명이 천 길이를 재고, 자르고, 재봉하느라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다. 대표적인 영세 산업으로 쪼그라든 국내 일반 봉제 공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봉제업계에선 1~2월이 대표적인 비수기지만, 이곳엔 일감이 넘치고 있었다. 이 공장을 운영하는 의상 개발·생산업체 '비에파' 윤순민(34) 대표는 "실물과 같은 3D 모형 인간에 가상 의상을 입혀보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로 의상 개발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속도를 크게 끌어올린 덕"이라고 했다. 이 업체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디자인 하나를 개발해 생산하기까지 시간을 30%가량 단축했다.

중국과 동남아에 밀려 침체에 빠진 한국 봉제업계가 IT·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사라진 직원 빈자리를 메울 건 자동화 기술밖에 없다" "자동화 없이 생존이 어렵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3차원 디지털 트윈 익혀 '초스피드' 생산

비에파의 핵심 업무는 '연구소'라 이름 붙인 작은 방에서 이뤄진다. 직원들은 컴퓨터로 의상 패턴(설계도)을 만들어 컴퓨터 안에서 샘플을 확인한다. 이날도 직원들은 재킷 색을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바꿔보고, 가상 모델의 어깨를 들어보면서 원단의 구겨짐과 실루엣 변화를 체크했다. 전통 방식으로는 샘플 제작·배송 등을 모두 합쳐 빨라도 하루가 걸리는데, 컴퓨터로 하면 30분도 채 안 걸린다고 한다.

직원이 2명뿐이었던 이 업체는 2017년 디지털 트윈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 옷 생산 속도를 크게 끌어올려 '다품종 소량 생산' 전문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윤 대표는 "유행에 맞춰 더 빨리, 더 많은 옷을 만들어 시장에서 실험해 볼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업체가 매년 개발하는 디자인은 1500가지 정도로, 일반 업체의 배가 넘는다. 재주문 등 각종 피드백이 빨라지면서 미국·싱가포르 등 해외에도 거래처가 다수 생겼다. 올 1월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50%를 기록했다.

◇공장당 평균 종사자 4.0명 시대… "자동화 필수"

서울 시흥동에 있는 봉제업체 진성에프씨는 자동 단가 계산 프로그램, 컴퓨터 CAD(캐드) 패턴 생성·편집 프로그램, 자동 패턴 출력기, 자동 절단기 등 과정별로 필요한 자동화 기술과 기계를 도입했다. 이 회사 이기호(62) 대표는 "살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환갑 넘은 나이에 자동화에 집착하는 종합 IT 기술인이 됐다"며 "인건비가 계속 올라 사람에게만 의존할 수 없게 돼 수개월간 기계 작동법을 배웠고, 주변에도 권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시내 봉제 공장이 밀집한 주요 지역엔 정부나 지자체 지원으로 영세 업자들에게 자동화 기술을 제공하고 교육하는 센터도 여러 곳 있다. 서울의류협회 관계자는 "아직 소수지만 센터에 원단을 들고 와 자동 재단기 등 공용 기계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새 기술을 익히는 분이 점점 많이 보인다"고 했다. 서울창신의류제조센터 관계자도 "작년부터 저가 의류를 대량 생산하는 이 지역에서도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2021년 기준 한국 의류 봉제 공장의 97%가 영세 업체고, 평균 종사자 수는 4.0명이다. 10년 전인 2011년 6.2명 대비 35% 이상 줄었다. 또 섬유산업연합회 통계에 따르면, 60대 종사자는 32.6%, 40~50대 종사자는 58.9%다. 업계 관계자는 "봉제 산업은 인력난이 심하고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간다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고자 :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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