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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두 예언자가 있었다.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 영화 DVD를 우편으로 배달해주는 월 구독 서비스를 창업한 이들에게 새 신탁이 내렸다.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골라 보게 하라. 떼돈을 벌게 해주겠다."

이들이 만든 신(神)의 이름은 넷플릭스였다. 신탁은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갔다. "영화는 극장에, 방송은 TV에만 있으나, 나는 휴대폰으로 어디서든 너와 함께하겠다. 클릭하라. 네가 좋아하는 것을 주겠다. 더 많이 클릭하라. 더 좋아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너의 모든 클릭을 분석해 더 더 좋아할 것들로 돌려주겠다."

세상은 이미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신들로 넘쳐나는 만신전이었다. 유튜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네이버 등으로 신들의 이름은 각기 달랐다. 경찰은 범죄 단속, 운동 선수는 성적 향상, 정치인은 선거운동에 대해 신탁을 구했다. 알고리즘이 취향과 편견, 독선과 극단화의 거품에 인간을 가둔다고 경고하는 목소리엔 메아리가 없었다.

세상은 더 이상 책을 읽거나 전문가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는 걸 당연하다 여겼다. 사흘과 4일을 구분 못 하고, 명징과 직조에 분노하며, 6·25가 북침이라 해도 아랑곳없이 만신전은 번성했다. 그런 세상에 넷플릭스는 낯익고도 새로운 신이었다. 취향을 더 쪼갤 수 없을 데까지 세분해 개인별 최적화하는 '넷플릭스 양자 이론'을 세우고, 안 보고는 못 배길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추천했다. 신민들은 열광했다.

TV와 영화의 사제들이 앞다퉈 새 제단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올렸다. 제물이 더 맵고 선명할수록 태우는 연기는 더 높은 하늘로 올랐다. 다만 연기의 색깔은 갈수록 비슷해져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넷플릭스의 예언자는 "우리는 당신의 잠자는 시간과 경쟁하겠다"고도 했다. 예언은 실현됐다. 드라마 여러 편을 보느라 밤을 새우고 주말을 날리는 '몰아보기'는 일종의 초월적 환각으로 각광받았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서 뭘 볼까 고민하느라 넷플릭스에 머물렀다. 구독료는 매월 결제됐다. 돈이 몰리자 경쟁이 격화했다. 작년 한동안 100만명 가까이 회원 수가 줄었다. 제작비가 폭증하자 수익도 악화했다. 주가는 한때 3분의 1토막 났다. 그러자 새 신탁이 내려왔다.

"내 신민의 수가 2억3000만명인데 1억명이 계정을 공유하는구나. 원하는 걸 다 주는데 너희는 어찌 지갑을 더 열지 않느냐. 머릿수는 채울 만큼 채웠으니, 한집에 살지 않는 자들의 계정 공유는 올해 1분기로 끝이다. 앞으로는 돈을 더 내든지 광고를 봐라." 징벌은 이미 남미 몇몇 나라에서 시작됐다. "어리석구나, 내 앞에서 숨으려 하는 자들아. 나는 IP 주소로 네가 어디 있는지 알며, 기기 ID로 네가 뭘로 보는지 안다. 그 모든 개인 데이터를 알리지 않을 자유는 네게 없다. 너, 차단!"

신민들은 불평했다. "겨우 5년 전 공식 트위터로 '계정 공유는 사랑'이라더니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꿉니까." 하지만 이 신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혼잣말이 들리는 것 같다. '아니꼬우면 한번 끊어 보시든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계정 공유 단속이 시작되면 넷플릭스를 끊겠다는 사람이 미국 한 조사에선 62%, 국내 한 IT 전문 매체 조사에선 73.5%였다. 앞장서 바다를 갈라줄 지도자도 없는 신민들이 '넷플릭스 엑소더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말 바꾸는 예언자를 백성은 언제까지 두고 볼까. IT와 콘텐츠의 세계엔 수많은 기업이 나고 졌다. 뒤 물결에 밀리든 제 꾀에 발목 잡히든, 영원한 1등은 없었다. 기고자 : 이태훈 문화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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