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네덜란드·벨기에 항구 통해 밀반입, 佛·스페인 등 각국으로 퍼져

지난달 9일 저녁 벨기에 북서부 항구도시 안트베르펜 한 주택가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기관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괴한 여러 명이 한 가정집 차고를 향해 총을 난사, 집 안 가스레인지가 폭발하며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집 안에 있던 11세 소녀가 숨졌다. 공격 대상이 된 주택은 코카인 밀매업자의 소유로, 숨진 피해자는 그의 조카딸로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마약 거래와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며 "마약 밀매 조직의 보복 공격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 2대 무역항 중 하나로 꼽히는 안트베르펜에서는 지난해 이 같은 마약 관련 폭력 행위가 80건 넘게 발생했다. 바르트 더 베버르 안트베르펜 시장은 "무고한 희생자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마약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네덜란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마약 관련 탐사 보도를 해온 피터 드 브리에스 기자가 갱단 총격으로 사망해 충격을 줬고, 심지어 마약 갱단이 마르크 뤼터 총리의 움직임을 실시간 감시하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총리실은 경호 수위를 대폭 강화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남미는 역대 최대 코카인 생산 호황을 맞고 있다"며 "기록적인 양의 마약이 북미에 이어 유럽으로 상륙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마약 조직은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벨기에 안트베르펜항을 통해 코카인을 유럽으로 반입한다. 이곳을 통해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코카인이 퍼져 나간다. 유럽 마약 및 약물 중독 모니터링 센터(EMCDDA)에 따르면 2021년 유럽인 약 350만명이 코카인을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로이터통신은 "콜롬비아 당국이 지난해 적발한 코카인 671t은 최근 4년 새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같은 기간 유럽 곳곳의 항구에서 압수한 코카인은 약 214t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보다 6% 증가했다. 벨기에 당국이 지난해 안트베르펜항 한 곳에서 적발한 코카인은 110t에 달했다. 가디언은 "벨기에서 압수한 코카인이 100t을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마약 접근이 쉬워지면서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어렵지 않게 구해, 빠르게 중독된다는 것이다. AFP통신은 지난 16일 "유럽 주요 도시에서 코카인을 피자처럼 간단히 주문할 수 있게 됐다"며 "1g에 70유로(약 9만원)로, 왓츠앱 등 어플로 마약을 주문하면 20분 안에 배달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파리의 마약수사반 버지니 라하이 국장은 "최근에는 도시 외곽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찾아가는 것보다 배달받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고 했다.

남미 각국에선 마약 산업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으로 꼽히는 콜롬비아에서 2021년 코카 잎 재배자는 전년보다 14% 증가했다. 현재 콜롬비아에서 연간 생산하는 코카인은 약 972t에 달한다. 콜롬비아에서 코카 잎을 재배하며 생계를 꾸리는 호세 델 카르멘 아브릴씨는 "주민들은 마약 조직에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그들은 정부와도 같은 존재"라며 "정부가 제공하지 못한 학교나 보건소, 도로 같은 사회 기반 시설을 조직에서는 코카인을 수출한 돈으로 지어줬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콜롬비아 당국은 새로운 전략으로 '마약과 전쟁'에 나섰다. 지난달 소니아 로드리게스 콜롬비아 법무부 대변인은 "광대한 기업형 코카 농장을 주요 타깃으로 박멸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카인 재배지를 초토화해 소규모 농가에도 피해를 주는 기존 방식 대신 마약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갱단을 집중 추적하겠다는 것이다. 코카 잎 재배 농가에는 보조금을 지급해 활로를 찾아줄 방침이다. 하지만 콜롬비아 내 코카인 생산량이 매년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방식이 효과적일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국제 코카인 이동 경로 기고자 : 김나영 기자
본문자수 : 193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