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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금지 조항' 놓고 美 시끌

2010년대 초 미국 샌드위치 체인 '지미 존스'는 직원들과 고용계약을 맺으면서 이런 조항을 달았다. '3마일(약 4.8km) 내에 있는 다른 음식점 가운데 샌드위치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를 넘는 곳으로 옮겨 일하면 안 된다.' 샌드위치 만드는 일을 배운 직원이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이 조항이 불합리하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이 업체는 해당 조항을 없앴다.

이처럼 구직자가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고용계약 조건을 '경쟁 금지 조항'(Noncompete Clause)이라고 한다. 현재 적지 않은 미국 기업들이 직원과 계약하며 이 조항을 넣고 있는데, 앞으로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내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지난달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기 때문이다. 리나 칸 FTC 위원장은 "이 조항은 경쟁을 해치고, 기업의 역동성을 저해하며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 경영계는 "FTC가 내놓은 규정은 분명히 불법"이라며 들끓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종 업계 이직 금지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직원들의 이직은 어느 선까지 허용하고, 어느 선부터 막아야 할까.

샌드위치·창고 직원도 '이직 제한'

미 FTC에 따르면 이 조항은 주로 회사의 영업 기밀이나 전략, 업무상 얻게 되는 특수 기술 등의 유출을 막기 위해 1800년대부터 존재했다. 요즘에도 아마존과 구글 등 대형 IT 업체 간에 이 조항을 둘러싸고 소송전이 빈번하다. 가령, 지난 2014년 졸탄 스자바디 아마존웹서비스(AWS) 리더가 구글로 이직하자 아마존은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가 퇴사 후 18개월 안에 경쟁 업체로 이직할 수 없다는 조항에 서명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아마존은 2020년에도 전직 AWS 마케팅 부사장이 구글로 이직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샌드위치 가게나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저임금 근로자에게까지 무분별하게 경쟁 금지 조항을 들이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조항이 민간 분야 근로자 20~45%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제학자들은 수십년 동안 중산층의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로 이 경쟁 금지 조항을 꼽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정규직 근로자 수가 약 1억50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3000만명 이상이 이직에 제한을 받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근로자들은 이 조항에 대해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채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 미국 NBC 방송에 따르면 미국의 한 연구기관이 1만1000명 이상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약 3분의 1은 입사 제안을 받아들인 뒤에야 이 조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조항 하나에 임금 370조원 달려

이 때문에 FTC 계획대로 경쟁 금지 조항이 금지되면 미국 근로자들의 처우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FTC는 이 조항이 없어지면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 총액이 매년 3000억달러(약 372조원) 정도 오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더 뉴요커'에 따르면 2008년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저임금 근로자에 한해 경쟁 업체로의 이직 금지 조항을 없앴는데, 그로 인해 임금이 5% 상승했다. 미국 재무부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저학력 근로자 중 15%, 연봉 4만달러(5000만원) 미만 근로자 중 14%가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하며 "남성과 여성, 백인 노동자와 소수 인종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조항은 직원들의 봉급 인상을 억제하려고 만들어졌다"며 "이직의 자유를 제한하는 고용 계약조항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반발하고 있다. 경쟁 금지 조항으로 인해 영업 비밀을 보호하고 비싼 돈을 들여 교육시킨 직원의 '먹튀'를 막아왔는데, 조항이 사라지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상공회의소 션 헤더 부사장은 "경쟁 금지 조항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모든 주(州) 법률에 저촉되며, 연방 의회가 FTC에 해당 조항을 없앨 권한을 준 적이 없다"고 반발했다. FTC는 다음 달 1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친 뒤 투표권을 가진 4명의 위원을 대상으로 폐지 여부에 대해 표결을 할 예정이다.

한국도 소송 빈발...터무니 없으면 '무효'

국내에서도 비슷한 조항을 근로계약서에 넣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업종이나 영업 또는 연구·개발(R&D)이 주력인 업종에서는 퇴사 후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간 동종 업계 취업을 제한하는 조항이 보편화됐다.

미국 FTC와 달리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조항에 대해 입장이나 방침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관련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이 판단한다. 법원은 대체로 ▶직원이 기존 회사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 ▶영업 비밀의 가치가 있는지 ▶이직을 금지하는 기간이 적정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2018년 반도체 상품기획팀장 출신 직원이 SK하이닉스로 이직하려고 하자 이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같은 해 반도체 설비 담당 임원 출신이 퇴사 석 달여 만에 SK하이닉스에 재취업했을 때도 소송을 냈다. 모두 2년 동안 동종 업체로 가지 않겠다는 계약을 어겼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은 모두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특별한 기밀을 갖고 있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긴 기간 이직을 막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약정을 맺었더라도 근로자의 직업선택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실제 결혼정보업체 K사는 지난 2010년 4월 수습으로 석 달 동안 일한 A씨를 정식 커플매니저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허락 없이 퇴직 후 3년 동안은 다른 결혼정보업체에 취업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달았다. 그런데 한 달 뒤 A씨가 경쟁 업체로 옮기자 계약을 근거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일한 기간이 다섯 달 정도에 불과한데 이직 금지 기간을 3년으로 정한 것은 균형에 맞지 않는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률사무소 '세로' 장철영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이직 금지 기간을 대체로 1~2년 정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인데, 일부 IT·플랫폼 기업 등은 3~5년 정도 이직을 금하는 계약을 근로자에 요구하는 추세"라며 "우리 민법은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 질서에 위반한 행위는 무효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터무니없이 불리한 조건이라면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픽] 미국 민간 기업 경쟁 금지 조항 활용 현황 / 미국 산업별 평균 이직률 기고자 :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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