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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집 만들고 시상식도 연다… MZ세대들의 이색 연말정산

직장인 박혜원(26)씨는 3년째 연례 행사로 한 해 자신의 삶을 톺아보는 '연말정산'을 한다. 한 해 수입과 지출을 결산하는 것뿐 아니라, 유튜브로 가장 많이 들은 음악, OTT에서 가장 많이 본 영상 콘텐츠도 순위를 매겨 본다. 시중에 출간된 '연말정산'이라는 제목의 책도 샀다. 질문집 형식의 책에 답을 쓰면서 한 해를 정리하는 일종의 '리추얼(의식)'. 박씨는 "일부러라도 기억을 되살리지 않으면 한 해가 그냥 두루뭉술하게 지나가서 '연말정산'을 시작했다"며 "매년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찾아낼 수 있고, 소소하게 기뻤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해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연말정산'이 젊은 층에서 인기다. 수입 지출만 정산하는 게 아니라 취향, 감정, 생각 등을 갖가지 방법으로 기록하고 결산한다.

프리랜서 노모(27)씨는 7년간 '나만의 연말 시상식'을 개최해 왔다. 시상 분야는 올해의 문장, 책, 드라마, 서비스, 인물, 공간 등 다양하다. 올해의 문장으론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나오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를 꼽았다. 노씨는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돌아보면서 한 해를 꼭꼭 소화시켜 넘기는 나만의 연례 행사"라며 "그간 감사하게 즐겼던 것들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매년 달라지는 취향을 발견하는 데서도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서점가에는 '자문자답 나의 1년', '나에 대한 모든 기록' 등 한 해를 돌아보는 내용의 책들이 출간됐다. 클라우드 펀딩 업체 텀블벅은 '연말정산'이라는 40쪽짜리 문답집을 만들어 출간했는데 5000여 권이 팔려나갔다. 책에는 '작지만 소중한 나의 루틴' '올해 가장 많이 먹은 것' '올해 되돌리고 싶은 일' '큰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 '나만 알기 아까운 것' 등 100가지 질문이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채워 넣어가는 식이다.

연말정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각종 플랫폼에서도 '연말 결산' 서비스를 내놨다.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와 유튜브 뮤직은 이용자가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음악과 아티스트 순위와 청취 시간 등을 제공한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당신의 기록' 서비스를 통해 한 해 동안 구매한 도서 권수와 구매한 책을 바탕으로 구매자의 관심 분야를 보여준다. 네이버 블로그는 '2022 마이 블로그 리포트'를 통해 이용자가 1년 동안 올린 게시물을 분석해 인기 게시글과, 반응을 많이 보낸 이웃 등을 분석해 준다.

음악 감상이 취미인 직장인 김모(26)씨는 "힙합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산해 보니 EDM(전자음악)이더라"며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알아가고, 친구들의 취향을 알아나가는 데서도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직장인 오지은(26)씨는 "'마이 블로그 리포트'를 보면서 내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며, "나의 변화된 관심사와 자칫 잊을 뻔했던 기록을 꺼내 보는 데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연말정산이 일상의 사소한 재미와 의미를 중시하는 MZ세대가 나름의 역사를 쌓아가는 방식"이라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한 해 동안 자기가 말하고 경험하고 체험한 것들을 되새김질하며 자칫하면 '쓸모없는 것'이라고 넘길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취향을 기록하는 MZ들의 문화"라고 했다. '2023 트렌드노트'를 펴낸 생활변화관측소 관계자는 "소셜미디어에 소소하게 일상을 묘사하던 행위가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 취향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며 "대단한 모험 과정, 극적인 성취를 이뤄낸 것이 아니더라도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연말결산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고자 : 구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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