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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주역 7명 사퇴, 난기류 'K로켓' 살리려면

지난 11일 일본 우주개발업체 아이스페이스는 자체 개발한 달 착륙선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민간 기업으로 세계 첫 사례다. 같은 날 미항공우주국(NASA)은 한 달 동안의 달 궤도 비행을 마친 무인 우주선 오리온을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향후 스페이스X 등 민간 기업들과 손잡고 오는 2028년까지 달에 유인 우주 기지를 세울 계획이다.

불과 2~3년 전이었다면 한국에 이런 일들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위성이나 탐사선을 만들 기술은 있지만 이들을 우주로 쏘아 올릴 원천 기술이 없었기 때문. 지금은 다르다. 한국은 지난 6월 한국형 발사체(누리호) 발사에 성공해 자력으로 실용급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7번째 국가가 됐다. 로켓 기술 확보라는 가장 큰 산을 넘었으니 발사 기술을 고도화하고, 민간 기업과 협업해 양산 능력을 키우는 나머지 단계를 잘 마무리한다면 미·일과 같은 우주 강국 대열 진입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주 선진국을 향해 힘차게 날아갈 것 같던 'K로켓'이 최근 뜻밖의 난기류를 만났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서 지난 10년간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진두지휘한 고정환 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과 옥호남 나로우주센터장, 부장급 인사 5명 등 발사체 개발 핵심 인력이 줄줄이 사퇴서를 내면서 우주 개발 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것. 항우연이 최근 강행한 조직 개편안으로 발사체본부 조직이 사라져 연구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게 사퇴 이유다. 내홍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당장 내년 누리호 3차 발사 등 굵직한 연구 프로젝트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수족 다 잘라" vs. "불가피한 개편"

항우연은 다음 달 1일 적용되는 조직 개편을 통해 엔진·발사대 등 기술 분야에 따라 팀을 나눠 운영하던 기존 방식에서 연구 사업별로 연구원을 꾸리는 매트릭스 조직(다른 부서에 속한 직원들이 프로젝트에 따라 한시적으로 팀을 꾸림)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항우연 관계자는 "누리호라는 로켓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기존의 발사체본부와 같은 단일 체제가 필요했지만 이를 토대로 다양한 연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려면 사업에 따라 연구원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반면 고정환 본부장 등은 기존 발사체본부에 본부장 1명, 행정요원 5명만 남기는 이번 개편안이 '상위 부서로 흡수해 기존 본부를 해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 본부장은 과기정통부에 제출한 사퇴서에서 "부와 팀을 폐지해 머리만 있고 수족은 모두 잘린 상태가 됐다"며 "향후 차세대 로켓 개발, 산업체 기술 이전을 완수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항우연 내홍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고생한 연구진을 토사구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발사체 개발에 실패했다면 문책성 인사 조치가 당연하지만 발사에 성공했는데도 항우연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조직 개편을 강행했다는 것. 하지만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지난해 초 취임 후 고정환 본부장과 수차례 조직 개편안을 논의했다. 고 본부장에게 발사체본부의 상위 부서인 발사체연구소 소장직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본부장은 사퇴서를 낸 뒤 휴가를 떠나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항우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당사자인 고 본부장이 나타나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갈등을 해소할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전·현 원장 간 알력 싸움?

항우연 안팎에선 이번 내홍을 두고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발사체본부는 항우연 내에 있는 연구 부서이면서도 항공·위성 분야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됐다. 2010년대 초반 러시아 기술을 들여와 개발한 로켓인 나로호가 두 차례 발사에 실패한 이후 정부가 직접 발사체 연구단을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발사체본부장 인사권을 과기정통부 장관이 행사한 것. 발사체 개발은 항우연 내에서 이뤄지면서 사실상 항우연 원장보다 과기부가 더 많은 입김을 행사하는 구조가 10년간 이어진 것이다.

발사체와 위성 분야의 두 연구 조직 간 해묵은 갈등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항우연 출신 한 대학 교수는 "항우연 내 영향력이 큰 특정 인사들이 발사체본부 인사권을 좌우하면서 항우연 원장은 그동안 반쪽짜리 기관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며 "항공 출신 전임 임철호 원장과 위성 개발을 해온 이상률 현 원장이 조직 개편과 인사 문제로 발사체본부 측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현직 원장들의 파워 게임이란 시각도 있다. 한 전임 원장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사체 조직 해체로 내년 연구에 차질이 생겼다' '위성과 달리 발사체는 모두 국산화가 필요해 현재 본부의 팀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다른 전임 원장은 "누리호가 개발될 때까지는 지금 발사체본부처럼 원팀으로 가는 게 맞지만 그 이후 프로젝트까지 하려는 건 선배들의 노욕"이라며 "40대 나이에 발사체본부를 맡은 고 본부장처럼 현재 실무 연구원들로도 향후 프로젝트를 충분히 꾸릴 수 있다"고 했다.

독립성 보장된 컨트롤 타워 세워야

항우연 내홍 사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 일본, 유럽 등 우주 선진국에서도 발사체 기술 확보 이후 연구 조직을 일부 손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항우연처럼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발사체본부가 항우연 안에 있는 동시에 과기부 관리를 받는 기이한 구조에서 오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한 정부 출연 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갈등은 항우연 내에서 풀어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주 정책 거버넌스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설립 예정인 우주항공청을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우주 컨트롤 타워로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말한다. 일본은 우주개발 초기 문부과학성뿐 아니라 방위성, 총무성 등 여러 부처의 간섭을 받았다. 이 때문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2008년 우주기본법 제정을 통해 내각부에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우주개발 전략 최상위 기관(우주개발전략본부)을 설립했다. 우리로 치면 대통령이 직접 우주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미국도 우주 개발 총괄 기구인 NASA를 창설하면서 CIA(중앙정보부), Fed(연방준비이사회) 수준의 독립성을 갖춘 연방 행정기관으로 만들었다. 의회나 다른 부처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존 록스돈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 'NASA 탄생과 우주탐사의 비밀'에서 한국 우주 정책을 언급하며 "한국이 우주 활동 분야에서 주요 참여국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독립된 우주 관련 정부조직을 창설해야 한다"고 썼다. 기고자 :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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