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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년전 운석 떨어진 합천에 지질명소 만든다

지난 15일 오후 경남 합천군 초계면 대암산 정상(591m).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이곳 산 정상 아래로 커다란 그릇처럼 움푹 파인 지형이 넓게 펼쳐졌다. 높이 200~700m 산봉우리들이 울타리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중심에는 평탄한 지형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분지(盆地)의 모습이었다. 산 정상 초소에 있던 산불 지킴이가 "저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합천군 적중면과 초계면에 걸쳐 있는 지름 7㎞의 이 분지 이름은 적중·초계분지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운석충돌구(Impact Crater·운석이 충돌해 만들어진 구덩이)다. 5만년 전 별똥별이 떨어져 엄청난 폭발 후 운석충돌구가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촬영을 위해 대암산에 자주 오른다는 김동우(45)씨는 "대암산 정상은 예전부터 은하수나 별 사진 촬영 명소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대암산 바로 앞에 운석이 떨어졌다고 하니 신기하다"며 "저기 분지가 운석충돌구라는 게 알려지면서 사진·바이크 동호인들의 발길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김윤철 합천군수는 "이곳을 운석·지질 테마 관광지로 만들겠다"며 "운석·지질 등을 주제로 하는 세계엑스포 개최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유일 운석충돌구로 확인된 적중·초계분지

적중·초계분지를 위성 지도로 보면 마치 화산 분화구같이 움푹 파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질학자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이곳이 운석 충돌로 형성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조사·분석은 2년 전인 2020년에야 이뤄졌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 임재수 박사는 20일 "지질조사를 위한 시추(試錐) 작업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2020년 때마침 '지질도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합천 지역 지질조사 기회가 생겼다"며 "보통 지질조사에서는 20~30m 깊이로 시추 작업을 하는데 적중·초계분지에서는 운석 충돌 여부를 확인하고자 142m까지 팠다"고 말했다.

그렇게 굴착해 얻은 암반을 연구진이 분석, 지하 130m 지점에서 운석 충돌로 인해 생기는 원뿔형 암석 구조를 확인했다. '충격원뿔암(shatter cone)'이다. 운석 충돌 때 발생하는 강한 충격파로 인해 기존 암석과 광물 속에는 흔적이 남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인정받는 증거물이 충격원뿔암이다.

임 박사와 연구진은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합천에 운석이 약 5만년 전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2020년 12월 지질학 국제 학술지 '곤드와나 리서치(Gondwana Research)'에 실렸다. 전 세계에서 학계 등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운석충돌구는 200여 곳이다. 동아시아 지역으로 좁힐 경우 지난 2010년 발표된 중국 슈엔 운석충돌구 이후 합천 적중·초계분지가 두 번째다. 연구진은 적중·초계분지에 떨어진 운석의 지름이 약 200m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했다. 임 박사는 "합천 운석충돌구 발견은 지질학 분야에서 여러 연구와 분석을 가능케 하는 실험장을 우리나라가 보유하게 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세계지질공원 등재 추진

합천 운석충돌구는 지질학계 성과로만 그치지 않고 관광자원으로도 조명받고 있다. 합천군은 이곳에 지질 테마 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우선 운석충돌구에 대한 홍보·교육·전시·체험 시설 등을 갖춘 거점센터를 만든다. 총 59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시작해 2024년 말까지 거점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운석충돌구 내부의 '지오사이트(Geo Site·지질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특이한 지점)'를 개발해 탐방객들에게 볼거리와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 2025년엔 150억원가량을 들여 운석충돌구를 중심으로 4개 코스의 탐방로(51.6㎞) 조성을 추진한다.

국가지질공원과 세계지질공원 지정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우리나라엔 총 13곳의 국가지질공원이 지정돼 있다. 이 중 제주도와 경북 청송, 전남·광주 무등산권, 경기도 한탄강 일원 등 4곳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난 8월 발표한 '합천 운석충돌구 관광자원 기초조사 및 활성화 용역'을 통해 "운석충돌구의 희소성을 고려할 때 추가 연구만 뒷받침된다면 세계지질공원 등재 추진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합천군은 또 운석충돌구를 테마로 한 국립 전문 과학관 유치, 상징 건축물 건립 등도 추진한다. 이 같은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지는 2026년에는 운석·지질 등을 테마로 한 세계엑스포도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합천군은 정부의 국제행사심사위 의결을 거쳐 엑스포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2030년 부산시가 유치하려는 세계엑스포는 국제박람회기구(BIE)가 공인해 치르는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김윤철 합천군수는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 합천 영화세트장 등 기존 관광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운석충돌구를 테마 관광지로 적극 육성해 연간 관광객 500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기고자 : 합천=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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