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카타르 월드컵이 촉발… 국가 이미지 바꾸기 경쟁 불붙었다

2022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지역 국가들이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를 통해서 국가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 매체 '스포팅 뉴스'는 18일(현지 시각) "4년 전 러시아월드컵 결승에서 기록한 최다 시청자 수(11억2000만명)를 넘어 약 15억명이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이번 월드컵 결승전을 지켜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인구 5~6명 중 한 명꼴로 결승전을 시청했다는 것이다. 미 CNN방송은 지난 17일 "세계 주요 액화천연가스 수출국인 카타르는 단순히 에너지 부국이 아닌 정치·경제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원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카타르는 '소프트파워'인 스포츠를 중요한 도구로 삼았다"고 전했다. 월드컵을 통해 국가 인지도를 높이고, 외국 자본을 유치해 첨단 미래 도시로 거듭나려는 시도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카타르월드컵은 개막을 앞두고 인권 문제가 대두되며 유럽권을 중심으로 한 보이콧 바람에 직면했었다. 특히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해외 노동자 수천명이 열악한 환경 속에 사망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월드컵 본연의 가치인 축구를 즐기러 카타르에 온 전 세계 팬들의 만족감은 높았다. 경기도와 비슷한 작은 면적에 빽빽이 들어선 8개 스타디움은 무료로 개방된 메트로 열차로 연결됐다. 팬들은 에어컨이 나오는 최신식 경기장을 오가면서 하루에 2~3경기를 보며 월드컵을 만끽했다.

카타르는 국가 이미지를 고양시키기 위해 월드컵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카타르가 이번 월드컵 개최를 위해 지출한 비용은 총 2200억달러(약 287조원·추산)로 이는 4년 전 러시아 월드컵(116억달러)의 19배에 달한다. 메트로 열차에 360억달러, 하마드 국제공항 160억달러, 경기장 건설에 100억달러 등 인프라 건설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의 성공 개최에 힘입어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도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카타르는 이미 2023년 아시안컵과 2030년 하계아시안게임 등 여러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를 확정한 상황이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중동에서 처음 월드컵을 연 카타르는 전 세계에 '성공'을 알렸다"며 "카타르에서 촉발된 스포츠 이벤트 개최 열풍이 중동으로 확산되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경쟁이 격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카타르와 함께 중동의 '스포츠 맹주'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우디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 2016년 석유에 의존해온 산업 구조를 다각화하고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에 투자해 사회·문화적 전환을 이룬다는 '비전 2030'을 선포한 바 있다. 스포츠 행사 개최는 '비전 2030'의 주요 프로젝트로 꼽힌다.

사우디는 이미 '오일 머니'를 앞세운 신생 골프 리그 LIV투어를 올해 출범시켜 세계 프로 골프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 골프는 내년엔 대회 수를 8개에서 14개로 늘리며 4억500만달러(약 5279억원)의 총상금을 책정했다. 엄청난 '돈 잔치'에 필 미켈슨과 더스틴 존슨, 브라이슨 디섐보 등 거물급 스타들이 PGA(미국프로골프)투어를 떠나 LIV골프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사우디는 2029년에는 북서부 홍해 연안에 건설하는 초대형 신도시인 '네옴 시티'에서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 사막의 나라에서 열리는 겨울 스포츠 대회라 경기장 건설 등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다. 사우디는 이집트 등과 함께 2030년 월드컵 공동 개최에도 도전한다.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의사도 밝힌 상태다.

월드컵·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는 F1(포뮬러원) 자동차 경주의 주요 무대도 중동이 됐다. 바레인이 2004년, UAE(아랍에미리트)가 2009년부터 매년 F1 그랑프리 대회를 열고 있다. UAE도 골프와 테니스 등 스포츠 대회가 끊이지 않고 열리는 나라다.

중동 국가들의 이런 행보에 대해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이란 비판도 나온다. 이는 한 국가가 독재나 인권침해, 부정부패 등으로 나빠진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후원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영국 가디언은 "사우디는 카타르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국제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큰 힌트를 얻었다"며 "이미 사우디 관광 홍보대사인 리오넬 메시가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면서 '스포츠워싱'의 효과를 거둔 사우디는 앞으로 2030 월드컵 유치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픽] 중동 '스포츠 맹주' 노리는 사우디와 카타르 기고자 : 장민석 기자
본문자수 : 229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