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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짐작할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의 지긋지긋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이야기다. 누구나 전주만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을 지경이 된 이 노래가 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끔찍하지만 기록적이다.

이 노래는 지난 2019년부터 연속으로 크리스마스 시즌 빌보드 1위에 올랐다. 이전의 어떤 노래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발매된 건 1994년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좋았다. 팝스타의 캐럴은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처럼 당대의 디바가 캐럴 음반을 낸 건 드문 일이었다. 성대도 젊은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라이브에서 '삑사리'를 내는 일도 없었다.

노래는 곧 악몽이 됐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한국인에게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과 같은 지위를 얻은 지 오래다. 겨울이 오면 전자를 듣고 봄이 오면 후자를 들어야 한다.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지 않더라도 커피숍에서 옷 가게에서 라디오에서 어김없이 들려온다. 이러니 사람들이 두 노래를 '성탄 연금'과 '벚꽃 연금'이라 부르는 것이다.

찾아보니 머라이어는 이 노래로 지금까지 900억원가량을 벌었다고 한다. 버스커버스커 멤버는 금세 건물주가 됐다는 뉴스가 나온 적 있다.

지난주 길을 걷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듣고 싶어졌다. 워낙 지긋지긋해하던 노래라 90년대 이후 직접 내 귀에 걸고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쁜 노래는 아니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마스크 안 입으로 수줍게 따라 부르고 있다.

범유행이 끝나도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거다. 마스크는 나에게 몰래 노래하거나 눈은 웃으며 입으로 욕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 많은 독자분이 몰래 동의하실 것이다.

사실 내가 이 노래를 싫어한 이유는 질투였다. 매년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콘텐츠 소유자에게 느끼는 질투. 내가 가장 질투했던 영화 캐릭터도 비슷했다. '어바웃 어 보이'(2002)에서 휴 그랜트는 아버지가 작곡한 크리스마스 캐럴 한 곡의 저작권료로 놀고먹는 백수를 연기했다. 나는 그 영화를 통해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콘텐츠 소유자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러니 나도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내년에도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빌보드 1위를 한다면 이 칼럼도 그대로 실으면 어떨까. 사실 이 칼럼은 머라이어 캐리가 1위를 하는 한 매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나도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콘텐츠 소유자가 된 기분을 알고 싶다. 이것이 내가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모든 것이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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