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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부동산 등기부에 개인 주소

2020년 6월 탈북자 단체 대표 A씨의 집으로 한 방송사 취재진이 불쑥 찾아왔다. 당시 A씨는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 24시간 신변 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주소가 드러나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사가 A씨 주소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A씨가 대표로 있는 탈북자 단체의 법인 등기부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5월에도 금융 투자로 큰 손실을 봤다는 B씨가 해당 금융사 대표가 살고 있는 아파트 공용 현관까지 무단 침입해 집 초인종을 누른 일이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법인 등기부를 보고 대표의 주소를 알아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에서 수수료 700원만 내면 법인 임원이나 부동산 소유주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 호수까지 알 수 있게 돼 있어 개인 정보 유출과 범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대법원이 작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다른 주요 나라는 등기부에 부동산 소유주나 법인 임원의 주소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에서는 부동산 등기부에 소유주 이름과 생년월일만 공개하게 돼 있다고 한다. 부동산 소유자 주소를 열람하려면 상속, 매매 등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은 법인 등기부에 임원 이름만 포함하고 주소는 제외한다. 개인 정보가 무제한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현재 대법원은 등기부에서 부동산 소유주나 법인 대표의 주소를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방안을 세 갈래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부동산 등기부에서 소유주 주소 항목 자체를 없애는 방안이 있다. 행정 목적, 소송, 채권·채무 처리 등 필요한 경우에만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줘 주소를 파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법인 등기부에도 사무소 주소만 필수 기재 사항으로 하고 대표 주소는 선택 사항으로 하자는 내용이다.

또 부동산 소유주 주소는 매매, 담보, 압류 등 법적 절차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다. 법인 대표 주소도 사무소로 발송된 공문서, 고지서 등이 2회 이상 반송된 때에만 알려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등기부에 실제 거주지를 등록하지 않고 문서를 받을 수 있는 변호사나 대리인 주소만 등록하는 방안이 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2025년 도입할 등기 시스템에서는 주소 공시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법무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등에 의견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최근 개인 정보 침해 소지가 있는 법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령 90건, 145조항에 개인 정보 침해 요인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비업법은 경비원이 작성해야 하는 경비원 명부에 주요 신상뿐 아니라 취미, 교우 관계, 외모 특징까지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 명부는 경비원이 업무를 보는 사무소나 집단 민원 현장에 비치돼 있어 개인 정보 유출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학자금 대출을 받은 채무자가 배우자의 주소, 직장, 부동산, 금융 재산까지 신고하도록 한 조항, 과학기술 유공자 심사를 신청하는 사람이 본인뿐 아니라 세대원 정보까지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을 내도록 한 조항 등도 개선 대상으로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고자 :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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