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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연극, 주택가 감나무집에서 볼 수 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리자마자 스마트폰 지도 앱을 연다. 3번 출구로 나와 영아네김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야트막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들어 좌회전·우회전을 하며 걷기를 15분. 어두운 골목 끝에 반짝이는 장식등을 걸어놓은 단층 주택(라이트하우스)이 보인다. 감나무가 있어 일명 '감나무집'. 집 안에서는 청소와 발성 등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 최고 연극은 서울 성북구 주택가 감나무집에서 나왔다. 극단 하땅세와 연출가 윤시중이 만든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이하 '만 마디').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와 월간 한국연극의 '2022 공연 베스트7'에 모두 뽑힌 유일한 작품이다. 연극 전문가 80여 명이 올해의 수확으로 지목한 것이다. "가정집을 무대로 완전히 새로운 공간성을 창출했다. 연극의 본질이 극적 상상력에 있음을 증명했다"(평론가 우수진)는 평을 받았다.

'만 마디'를 감상하려면 신발부터 벗어야 한다. 입장권에 적힌 번호는 신발장 번호. 신발 정리도 외투 보관도 배우들이 한다. 집들이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거실을 무대로 삼는데 관객은 아랫목 객석(30여 석)에 앉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무대는 부엌과 화장실로도 확장된다. 두 배우가 흰 벽에 검은 페인트로 '1장 우애국'이라고 쓰자 연극이 시작된다.

유괴당한 '교령'은 조씨 집으로 팔려가 '개심'으로 개명하고 나중엔 '조청아'가 된다. 결혼해 낳은 3남 1녀 중 셋째 아들이 우애국이다.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자 상심해 외지를 떠돌며 살아간다. 우애국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가 그녀가 생전 그리워하던 오모세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만 마디'는 중국 유명 작가 류전윈(劉震雲)의 소설을 머우썬(牟森)이 희곡으로 옮겼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말[言]에 관한 연극이다. 수많은 말 속에서 하지 못한, 혹은 듣지 못한 한마디를 찾아 긴 여정에 오르는 사람들 이야기. 말이 돌고 돌아 반복되면서 서사에 독특한 리듬이 생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무대 언어다. 20세기 초부터 최근까지 100년간 50명이 넘는 인물을 배우 9명이 좁은 공간에서 기발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속도감이 붙는다. 배우들은 바퀴 달린 손수레, 샤워기, 양푼, 수건, 화장지 같은 소도구나 소품으로 장면을 떡하니 창조한다. 끈마저 적절하게 사용하며 수공업의 진수를 보여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시늉만으로도 관객은 상상에 젖는다. 전동 드릴로 뜯어낸 문짝을 배우들이 배처럼 타고 갈 땐 눈앞에 강물이 일렁이는 것 같다.

'2장 조청아'를 지나 '3장…'으로 닫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80분. 몰입감 때문인지 쏜살같다. 수직의 문짝을 침대처럼 사용하거나 트랙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앵글과 연극성에 감탄한다. 배우들이 가스불을 켜고 국수를 삶아 먹을 땐 침이 꿀꺽 넘어간다. 이 또한 연극의 일부다. 1인 5역 이상을 맡는 배우들은 어디서 모았는지 제각각 유니크(unique)하다. 주·조연이 따로 없다. 조청아를 연기한 배우는 다섯 살 꼬마부터 70대 노파까지 감당한다.

삶을 장악하는 말 한마디에 대한 서사, 작은 집에 담긴 큰 이야기다.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마디'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연극이 끝나도 관객이 여느 극장처럼 서둘러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점도 감나무집만의 특징이다. 가을에는 대추를 나눠 먹었다는데 요즘엔 귤을 하나씩 가져가라고 한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연극을 배불리 먹고 돌아가는 골목길. 귤을 까 입에 넣었다. 후식도 꿀맛이었다. 공연은 24일까지 라이트하우스. 기고자 : 박돈규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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